OECD 자살률 만년 1위…정신건강 지표도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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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김잔디 오진송 권지현 기자 = '7세 고시'로 대표되는 과한 사교육 열풍,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일자리를 위한 극심한 경쟁, 그 모든 걸 가까스로 버텨내더라도 피할 수 없는 노년의 가난한 삶은 현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신산한 삶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이런 서글픈 삶의 무게는 삶의 만족도 하락과 우울감의 증가, 그리고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만4천439명이 목숨을 내던져 2011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 '자살공화국' 같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는 앞으로도 한동안 대한민국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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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OECD 국가 중 삶의 만족도 최하위·자살률 최상위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의 삶의 조건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도는 6.4점(10점 만점)으로, 1년 전보다 0.1점 내렸다.
만족도는 2013년 5.7점에서 지속해서 올라 2018년 6.1점이 됐다. 그러다 2019년 6.0점으로 내린 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보합·상승을 거듭했으나 4년 만인 2023년에 다시 하락 전환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권이었다.
세계행복보고서의 국제 비교 결과를 보면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2021∼2023년에 6.06점으로 OECD 평균(6.69점)보다 0.63점 낮았다. 38개국 중 만족도 순위는 33위로 하위권이었다.
모든 자살이 낮은 삶의 만족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삶의 만족도와 자살률은 상관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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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22년 25.2명에서 2023년 27.3명으로 상승했다.
2024년에는 주민등록연앙(年央)인구 기준 10만명당 자살률이 28.3명으로 올랐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는 단연 최고다.
OECD에서 작성하는 국제 비교 자료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2021년 10만 명당 24.3명으로, 유일하게 20명대를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한국 다음은 리투아니아(18.5명), 슬로베니아(15.7명)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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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우울감 경험률 반등해 4년간 상승
자살과 연관 있는 우울에 관한 지표도 최근 들어 상승하고 있다.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3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11.6%였다.
우울감 경험률은 최근 1년 동안 연속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 등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뜻한다.
우울감 경험률은 2015년 13.0%에서 2019년 10.2%까지 내렸으나 이후 4년에 걸쳐 반등했다.
우울감 경험률은 젊은 층에서 유독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19∼29세 우울감 경험률은 2019년 13.0%에서 2023년 16.3%로 3.3%포인트 올랐다. 30∼39세의 경우 7.4%에서 11.6%로 4.2%포인트 상승했다. 다른 연령대에서 보합·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동안 줄어들던 중등도 이상의 우울 경험자와 재발성 우울장애 환자들도 최근 2년 사이 13% 가까이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23년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 가운데 중등도 이상 우울 에피소드 및 재발성 우울장애 경험자는 8천103명이었다. 2021년(7천200명)과 비교하면 12.5%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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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대책 마련 분주하지만…새해에도 잇단 자살 '비보'
정부는 자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골몰하고 있지만, 여러 통계로 드러나는 심각한 정신건강, 자살 실태만 보면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자살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지난해 일산화탄소 유발 물질에 대한 접근성을 줄이고, 청년층 대상 치료비 지원 요건을 완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새로 마련했으나 지난해 자살은 다시 늘기만 했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미래 세대다.
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자살을 생각한 청소년은 31.2%(자주 생각 4.7%+가끔 생각 26.5%)였다. 2020년(27%)보다 4%포인트가량 높았다.
2022년 응급실 자해·자살 시도자 내원 현황을 보면 10만명당 자해·자살시도율은 20대 190.8명, 10대 160.5명 등으로 청년층이 전 연령대(84.4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연초부터 잇따라 들리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 또한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정부는 지난해 자살 예방 대책을 마련하면서 "2023년 12월 유명인 사망 사건 직후 7∼8주간 자살이 증가해 모방자살 경향이 나타났다"며 유명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08년에 한 유명인이 자살한 직후에도 모방 자살로 900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영향이 7주간 이어졌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개 베르테르 효과가 3개월 정도 이어진다"며 "10∼20대의 자살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세상과 자신의 비교도 굉장히 큰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자살 문제 대책은 굉장히 종합적이어야 한다"며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의 감수성을 키워야 하고, 우리 사회가 이걸 꼭 해결해야겠다는 공동체의 노력에서 문제 해결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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