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가 또 해냈다. 아니, 이제는 '또'라는 표현도 어색할 정도로 당연하게 해냈다. 2025 MSI 우승이라는 화려한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젠지는 단순한 우승을 넘어 하나의 '시대'를 선언했다.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펼쳐진 7월 13일 결승전. 젠지는 영원한 숙적 T1을 상대로 세트 스코어 3-2라는 치열한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며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MSI 정상에 올랐다. 그저 연속 우승이 아니다. 이는 젠지라는 브랜드가 글로벌 이스포츠 씬에서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 무패 우승의 신화, 젠지는 어떻게 완벽했나
젠지의 이번 우승은 '무패'라는 수식어와 함께 더욱 빛난다. 2024년 LCK 4연속 우승에 더해 직전 MSI를 훌륭히 풀어가며 우승했던 젠지는 2025년에도 그 완벽함을 이어갔다. 2025 LCK 정규시즌 1-2라운드에서 18전 전승을 기록한 후 MSI 대표 선발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를 상대로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며 캐나다행 티켓을 따냈다.
MSI 브래킷 스테이지에서도 젠지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1라운드 G2 이스포츠전 3-1 승리를 시작으로 승자조 2라운드 애니원즈 레전드전 3-2 승리, 승자조 결승 T1전 3-2 승리를 거치며 결승전까지 한 번도 패자조로 내려가지 않았다.
특히 '룰러' 박재혁의 징크스가 화력 시범을 보인 승자조 결승은 젠지의 클러치 능력을 보여준 대표적 경기였다.
최종 결승전에서 젠지는 T1이라는 거대한 산을 다시 한 번 넘어야 했다. 1세트에서 T1의 조직력에 밀려 기선을 내준 상황. 하지만 젠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2세트에서 탑 라이너 '기인' 김기인의 사이온이 2명 이상의 역할을 해내며 1-1 균형을 맞췄고, 3세트에서 30분도 안 돼 허무하게 패하며 위기에 몰렸지만 4세트에서 '쵸비' 정지훈의 빅토르와 박재혁의 제리가 교전마다 맹활약을 펼치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 갔다.
진정한 승부사의 면모는 5세트에서 터졌다. 젠지는 드래곤을 연이어 가져가며 T1의 조바심을 유발했고, 무리하게 밀고 들어오는 T1의 공세를 침착하게 받아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과정에서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낸 '쵸비' 정지훈이 OPPO 선정 MVP를 수상하며 개인적 영예까지 더했다.

◇ 젠지의 DNA는 삼성 갤럭시 시절부터 시작됐다
젠지의 이번 성과를 단순히 최근 몇 년의 결과로만 보면 안 된다. 2017년 삼성 갤럭시라는 이름으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둔 그 DNA가 젠지 시대에 와서 완전히 꽃을 피운 것이다.
젠지는 MSI 역사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2015년 신설된 이래 MSI 연속 우승을 달성한 팀은 SK텔레콤 T1(2016-2017), 로얄 네버 기브업(2021-2022)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젠지의 연속 우승은 이전과 다르다. 단순히 우승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우승'을 연속으로 달성한 것이다.
젠지는 이번 MSI 우승으로 2025년 월드 챔피언십 직행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라이엇 게임즈가 2024년부터 도입한 MSI 우승 팀 월드 챔피언십 직행 특전을 통해 젠지는 오는 7월 23일 개막하는 LCK 3-5라운드에서 플레이오프 이상의 성적만 거둔다면 월드 챔피언십 출전이 확정된다.
1-2라운드에서 18전 전승을 기록한 젠지에게 4-5승 정도의 추가 승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레전드 그룹에 속해 있어 최소 4위 안에만 들어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작년보다 총 상금이 8배 늘어난 200만 달러를 걸고 진행된 이번 MSI에서 젠지는 50만 달러(약 6억 9천만 원)의 우승 상금과 함께 영혼의 꽃 흐웨이 관련 아이템 및 MSI 우승 관련 상품의 수익 일부를 추가로 받게 된다. 하지만 젠지가 얻은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 피어리스 드래프트가 만든 9번의 풀세트 드라마
2025년 MSI는 피어리스 드래프트 방식 도입으로 더욱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총 19경기 중 무려 9경기가 3-2로 결정될 정도로 접전이 이어졌고, 젠지 역시 G2 이스포츠전을 제외한 세 경기를 모두 풀세트로 마무리했다. 이는 젠지의 우승이 단순한 압도적 실력이 아닌, 극한 상황에서의 정신력과 클러치 능력을 통해 쟁취한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지역 간 실력 차이가 크게 좁혀진 것도 주목할 점이다. LTA 노스 대표 플라이퀘스트가 G2 이스포츠를 3-0으로 완파하고, LCP 1번 시드 CTBC 플라잉 오이스터가 T1을 궁지에 몰아넣는 등 글로벌 경쟁 구도가 한층 치열해졌다.
젠지의 MSI 2연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LCK 사상 최초로 4연속 우승을 달성한 젠지는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도 왕조를 구축하고 있다. 2017년 삼성 갤럭시 시절 월드 챔피언십 우승부터 시작된 이 조직의 우승 DNA가 젠지 브랜드 하에서 완전히 개화한 것이다.
T1과의 영원한 라이벌 구도 속에서 젠지는 '국제전에서 더 강한 팀'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룰러의 "월즈에서 T1 이겨야 진짜 승리"라는 말처럼 젠지의 진정한 목표는 월드 챔피언십이다. 하지만 이번 MSI 우승으로 그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선 것은 분명하다.
젠지는 이제 단순한 우승팀이 아니다. 하나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왕조다. 그리고 이 왕조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