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인간'·'지옥분노벌레'…살 떨리는 괴물 이야기
연합뉴스
입력 2025-05-22 17:41:28 수정 2025-05-22 17:41:28
이산화 작가 신간 '근대 괴물 사기극'


네스호의 괴물 조형물[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생물학자 칼 린네는 1758년 '자연의 체계' 제10판에서 처음으로 사족류의 명칭을 '포유류'로 바꿨다. 고래가 어류에서 포유류에 포함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와 함께 인간에게 '지혜로운 사람'이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붙여주었다. 그러면서 '낮의 사람'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낮에 돌아다닌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낮에 돌아다니는 동물은 한둘이 아닌데, 린네 같은 대학자가 이처럼 모호한 특징을 왜 인간의 가장 눈에 띄는 점으로 꼽았을까.

'낮의 사람'과 대조되는 '밤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과 닮았지만, 밤에만 활동하는 동물, 즉 '동굴 인간' 말이다. 린네는 이들에게 '호모 트로글로디테스'라는 거창한 학명을 붙여주었다.

"몸은 희고, 서서 걸으며, 키는 사람의 절반보다 작다. 수명은 25년. 낮에는 눈이 보이지 않아 숨고, 밤에는 눈이 보이기에 밖으로 나가 약탈한다."

린네는 '자연의 체계'에서 동굴 인간을 이처럼 묘사했다. 실제 본 적은 없지만,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쓴 글을 비롯해 수많은 문헌을 고증하고, 사람들의 목격담을 확인한 결과였다.

특히 1758년 런던에 '하얀 흑인'이 나타나 대중의 볼거리가 되면서 동굴 인간에 대한 궁금증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중에 백색증을 앓고 있는 자메이카 태생의 어린 흑인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백색증은 멜라닌 색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증상을 말한다.

린네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제자 요한 흐리드리히 그멜린은 슬며시 '자연의 체계' 13판에서 '동굴 인간'의 종명이었던 트로글로디테스를 '원숭이속'에 속한 다른 동물에게 붙였다. 현재도 그 이름은 침팬지의 학명인 '판 트로글리디테스'와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

벡두산 천지에 출현한 괴수?[연합뉴스 자료]

과학소설(SF) 작가 이산화가 쓴 신간 '근대 괴물 사기극'(갈매나무)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문헌에 기록됐거나 떠돌았던 괴물들의 이야기를 해부하고 파헤친 책이다. 저자가 동서양 문헌 자료를 수년간 탐독하고 조사해 잊히거나 지워진 괴물들을 생생히 복원했다.

1770년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궁에서 처음 등장해 80여년간 진위(眞僞)의 대상이 됐던 체스 두는 기계 '튀르크인', 날아다니며 인간의 몸속을 파고 들어간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지옥분노벌레', 커다란 풍선 인형인 것으로 밝혀진 '낸티켓 바다 괴물' 등 다양한 괴물과 이상한 것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책은 인류를 그럴듯하게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한 가짜 괴물 열전으로 출발하지만, 근대를 수놓은 갖가지 괴물이 어떻게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 허영을 자극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시시하고 허탈한 진실조차 가장 달콤한 거짓을 한없이 능가하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전한다.

"우리가 황당한 괴물 이야기를 얼마나 굳게 믿을 수 있는지, 한번 뿌리내린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역사를 수놓은 각종 소문과 거짓말 뒤에 감춰진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하나라도 더 많이 깨달을 때마다 우리는 분명 세상과 우리 자신을 한층 똑바로 이해하게 된다."

512쪽.

[갈매나무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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