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부터 피아니스트 말로페예프와 공연…"자연스러움 지향하는 듀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도전 생각…음악 앞에 진실한 예술가 되고파"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도전 생각…음악 앞에 진실한 예술가 되고파"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첼로 천재', '첼로 신동', '첼로 영재', '뜨는 별'….
첼리스트 한재민(19)의 이름 앞에는 어린 나이 대비 큰 재능을 상찬하는 말들이 통상 붙는다.
2021년 만 15세의 나이로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대회 역사상 최연소로 우승하고 같은 해 제네바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2022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마저 우승한 그에게 이런 수식어가 과하진 않을 터다.
"특별히 바라는 수식어는 없고 그냥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재민이 21일 서면 인터뷰에서 앞으로 바라는 수식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천재, 신동 등에 비해선 소박해 보이는 말이다.
한재민은 천재 등으로 주목받은 과거와 비교해 20대로 접어드는 지금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다.
"어릴 때는 단순히 첼로를 잘하고 싶은 아이였다면, 지금은 클래식이라는 장르 자체를 잘 이해하고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첼리스트라기보다는 음악가, 더 나아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며 "그래서 요즘은 음악 외에도 다른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재민은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말로페예프(24)와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러시아 출신의 말로페예프는 2014년 차이콥스키 영 아티스트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등 유수의 악단과 협연했다. 한재민과 말로페예프는 30일 대전예술의전당, 31일 통영국제음악당, 다음 달 1일 부천아트센터에서도 공연한다.
한재민은 말로페예프를 2023년 스위스 베르비에에서 처음 만났다고 떠올렸다. 짧게 만났지만, 음악적으로 강하게 끌렸다고 한다.
그는 말로페예프의 연주에 관해선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말로페예프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연주하는 걸 들었을 때 '자연스러움'이라는 인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저희가 함께 연주하면서, 서로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재민과 말로페예프는 이번 공연에서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글라주노프의 '음유시인의 노래', 프로코피예프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한다.
공연의 구성은 프로코피예프의 곡이 중심이 됐다고 한다. 이 곡은 한재민과 말로페예프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호흡을 맞춰본 곡이다.
한재민은 "당시 말로페예프가 생각하는 음악적 아이디어들과 연주가 정말 흥미로웠다"면서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의 중심을 프로코피예프로 세운 뒤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공연이 치밀하게 구조가 짜인 드뷔시의 첼로 소나타부터 따뜻하고 인간적인 프랑크 소나타, 러시아 특유의 애잔한 멜로디를 지닌 글라주노프 '음유시인의 노래'까지 프랑스와 러시아의 음악 색깔이 가득하다고 했다.
한재민은 "변화무쌍했던 후기 낭만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마스터피스(걸작)들을 함께 연주할 생각에 벌써 설렌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재민은 최근 흥미를 느낀 곡으로는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꼽았다. 3년 전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로 처음 이 곡을 무대에서 선보였으나, 최근 무대에서 다시 연주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그때 제가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 연주하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정말 많았다는 걸 느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진짜 '이불킥'하고 싶어질 정도였다"면서 "정말 위대한 곡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첼로 협주곡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재민은 베토벤 첼로 소나타에 대해서도 그 위대함을 언급했다.
"베토벤이 다섯 개의 소나타를 남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첼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곡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듯한, 모든 것을 초월한 베토벤의 음악은 모든 분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베토벤 서거 200주년을 맞는 2027년에 그의 첼로 소나타 5곡 전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다만 "아직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곡들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한재민은 다양한 현대음악도 선보였다. 작년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윤이상 첼로 협주곡 음반을 선보였고 신동훈의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를 아시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현대곡의 매력은 곡마다 다른데, 곡마다 해석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다"며 "작곡가님께 직접 궁금한 점을 여쭤보며 해석의 방향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한재민은 롤모델로서 자신의 스승들을 언급하면서 성장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에서 정명화, 이강호를, 현재는 독일의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볼프강 이마누엘 슈미트를 사사하고 있다.
"이강호 선생님, 정명화 선생님, 그리고 지금 배우고 있는 볼프강 이마누엘 슈미트 선생님 모두 제게 음악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본보기가 되어주신 분들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음악 앞에 순수하고 진실하게, 계속해서 성장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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