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K-팝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실험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공개 직후 미국을 포함해 주요국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팬들은 캐릭터별 뮤직비디오를 편집해 공유하고, OST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다. 성우 인터뷰와 메이킹 영상을 찾아보는 건 기본이다. 팬들은 좋아하는 세계관과 캐릭터가 있으면 영상·음악·게임·웹툰을 가리지 않고 소비한다.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에서도 확인된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개봉 이틀 만에 100만 명, 열흘 만에 300만 명을 넘기며 최종 563만 8천 명을 기록해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연간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를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도 전례가 없다. 한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팬덤 현상은 낯설지 않다. <스즈메의 문단속>부터 <귀멸의 칼날>까지 연속 흥행했다. K-팝과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의 교집합도 관찰된다. 소셜미디어에서 K-팝과 애니메이션 팬을 겸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극장가에서도 K-팝과 애니메이션 팬덤 문화의 소비 방식이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애니메이션 돌풍의 원인을 특정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흐름은 분명하다. 우선 세계관 중심 소비의 확산이다. 특히 주요 관객층인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 사이에서 스토리보다 캐릭터의 감정과 동기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캐릭터 행동의 맥락을 읽어내며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 해석을 나누는 공론장이다. 실제로 K-팝에서 검증된 팬덤 문화는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됐다. N차 관람, 굿즈 수집, 포토카드 증정 이벤트는 이제 음악 팬덤만의 것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기술력과 완성도다. 안정적인 제작 환경과 장기 투자가 뒷받침된 작화와 연출은 팬덤을 유지하는 주요 동력이다. 아쉽게도 애니메이션의 약진 이면에는 한국 영화의 부진이 있다. 최근 대형 블록버스터조차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장르 공식의 반복, 서사 피로도 누적, 제작 투자 감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와의 경쟁, 출연료 인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관객이 극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귀멸의 칼날>의 흥행은 한국 영화가 남긴 공백을 여실히 보여준다. 팬덤을 형성할 만한 콘텐츠 IP 개발이 제한적이었고, 극장 경험을 확장하는 기획력도 부족했다. 산업 구조 차원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애니메이션 인기는 일시적 거품이 아니라 관객들의 문화 소비 방식의 변화로 봐야 한다. 세계관·캐릭터 중심의 소비 패턴은 이미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의 미래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팬덤 시대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관 기반의 IP 개발, 팬과의 쌍방향 소통, 극장 경험의 재설계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콘텐츠 소비 지형이 바뀐 만큼, 기획과 제작 환경, 투자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경쟁 구도는 계속 출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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