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베를렌 평론집 번역 출간…연인 랭보 시 극찬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프랑스에는 비공식적으로 '시인의 왕자'(Prince des poetes)가 있다. 당대 단 한 명의 뛰어난 시인에게 동료 시인들이 투표를 거쳐 이런 호칭을 부여한다.
1894년 이 영예를 누렸던 시인 르콩트 드릴(1818∼1894)이 세상을 떠나자 시인들은 새로운 왕자를 뽑기 위해 의견을 모았고, 그 결과 선출된 사람은 폴 베를렌(1844∼1896)이었다.
베를렌은 비록 각종 기행과 무절제한 사생활로 평판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지만, 시인으로서의 업적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최근 출간된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들'(필요한책)은 베를렌이 문학적 동지로 여겼던 당대 상징주의 시인들의 삶과 시를 소개한 책이다.
제목에 '저주받은'이라고 쓴 것은 당시 상징주의 시인들이 문학적 진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존 문예 사조와 충돌하고 대중에게 외면당하던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상징주의는 사실주의·자연주의에 반발하며 탄생한 사조로 이후 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논리보다 상징과 암시에 더 집중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 때문에 처음에는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저주받은 시인들'은 시인 6명을 다룬다. 1884년 발간된 초판에는 트리스탕 코르비에르, 아르튀르 랭보, 스테판 말라르메 등 3명의 시를 실었고, 1888년에 낸 개정 증보판에 마르슬린 데보르드 발보르, 빌리에 드 릴라당, '가엾은 를리앙' 등 3명의 시를 추가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베를렌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랭보에 대해 쓴 두 번째 장을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베를렌은 1871년 랭보에게서 편지를 받고 그의 천재성에 주목하게 되는데, 얼마 후 자신보다 열 살 어린 데다가 17세였던 랭보와 연인 사이가 된다.
동성인 두 시인의 사랑은 순탄치 못했다. 베를렌은 1873년 술에 취해 랭보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가 손목에 상처를 입히고, 이 일로 투옥된다. 동성 불륜과 기행을 지켜보며 지친 베를렌의 아내 마틸드 모테는 감옥에 갇힌 남편을 두고 떠난다.
베를렌은 이 책의 원고를 쓸 무렵 작품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던 랭보에 대해 "지금 우리는 그와 거리가 있지만, 그의 천재성과 성격에 우리의 깊디깊은 존경심이 부족했던 적은 당연히 한 번도 없었다"고 깊은 신뢰를 드러낸다.
그는 또 "단어 선택이 항상 세련되고, 때때로 의도적으로 현학적이다. 언어는 순수하고 명확하게 유지되며, 개념이 심오해지거나 의미가 모호해져도 그렇다. 운율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랭보의 시를 극찬하며 '모음들', '저녁 기도', '앉아 있는 자들' 등의 작품을 보여준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시인 '가엾은 를리앙'(Pauvre Lelian)은 흥미롭게도 베를렌 자신이다. 이름 철자(Paul Verlaine)를 조금 바꿔 가명을 만든 것이다.
베를렌은 를리앙이 마치 타인인 것처럼 "이 저주받은 시인은 가장 우울한 운명을 지닐 것"이라고 평가하고 천연덕스럽게 자기 삶과 시를 소개한다. 책을 펴낼 당시 알코올 의존증과 빈곤에 시달리던 베를렌은 이런 문장들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에게는 다른 계획들도 많다. 다만 그는 병들고 다소 낙담하여 이제 잠자리에 들 수 있게끔 허락을 구하고자 한다. 아! 그 이후로, 완전히 회복되어, 그는 글을 쓰고 원하는 곳으로 가는데, 그것은 베아티투도(Beatitudo·행복은 마음과 태도에 달려 있다는 의미의 라틴어)의 상태로 사는 것과 같구나."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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