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멀어진 금강산
연합뉴스
입력 2025-07-14 12:30:37 수정 2025-07-14 12:30:37


금강산, 북한의 3번째 세계유산으로 (파리=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북한의 '금강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북한 대표단 관계자가 인사하고 있다. 2025.7.13 yes@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한국인이 '천하제일 명산'으로 불러온 금강산이 이제 명실상부한 세계인의 명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3일(현지시간) 파리 제47차 회의에서 북한이 신청한 금강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것이다. 위원회는 금강산이 특유의 지형, 천혜의 경관, 불교문화 등이 잘 어우러져 세계유산 조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헌법상 우리 영토 안에 있는 우리 산이니 엄청난 경사다.

금강산 천선대[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금강산은 기묘한 봉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1만2천봉'으로 불린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담았다는 웅장하고 다채로운 풍광 덕에 계절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새싹과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는 대표 명칭인 금강산, 녹음이 무성한 여름에는 봉래산,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엔 풍악산, 바위만 드러나는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칭한다. 이런 신비한 변화상은 한민족에게 종교적·무속적 믿음을 불렀다. 그래서 금강산은 불교 수행과 문화의 성지가 됐다. 산신령이 있다고 믿어 도를 닦으러 들어가는 이도 많았다. 유교의 전도사인 사대부 문인에게조차 금강산은 '버킷 리스트'에 포함됐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유학자가 율곡 이이다.


그런 만큼 금강산은 많은 사연을 품었다. 한민족 현대사의 희로애락과도 닮았다. 가장 가깝게 떠오르는 건 설레는 꿈처럼 시작했다 비극으로 끝난 금강산 관광 사업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8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던 고(故) 정주영이 당시 북한 통치자이던 김정일과 합의를 통해 금강산 관광길을 열었다. 초기엔 관광 대가로 매달 1천200만 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알려졌는데 날이 갈수록 북측은 더 많이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육로 관광도 시작됐다. 그러나 남북 경협을 상징하던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우리 국민이 금지 구역을 산책했다는 이유로 북한군 총격에 피살돼 중단됐다. 평범한 50대 주부는 금강산 유람을 떠났다가 관에 담겨 가족 품에 돌아왔다.


이를 포함해 금강산 관광 사업은 여러 논란과 상처를 남겼다. 현대 측이 북한에 준 돈이 핵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미국의 제재 대상에까지 올랐다. 현대그룹 적통 후계였던 정몽헌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거액을 북에 몰래 송금한 혐의로 수사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북 송금 의혹 특검은 현대가 북에 보낸 돈이 5억 달러라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이 거액이 핵 개발에 사용되지 않았고 북한이 핵을 만들 "기술과 의지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곧이 믿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북한은 이스라엘을 능가할 실질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 우리 군사력이 세계 6위란 소식도 있지만 비대칭전력인 핵을 포함할 경우 남북 대결은 북의 절대 우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총을 든 유럽인과 활을 쏘는 북미 원주민의 싸움에 비유될 정도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노래도 많다. 어린 시절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하며 고무줄놀이를 했던 기억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떠오른다. 플라시도 도밍고, 안젤라 게오르규, 조수미 등 정상급 성악가들도 불러 세계적으로도 알려졌다. 이 노래엔 사실 남북 간 치열한 체제 전쟁 역사가 담겼다. 원래가 주문 생산곡이다. 문교부 의뢰로 6·25 전쟁 12주년 기념식에서 초연할 합창곡으로 만들었다. 수백만 명이 사상한 3년 전쟁의 비극적 서사, 특히 완수 직전 좌절된 북진 통일에 대한 회한을 담았다. 주제는 피로 자유를 지킨 대한민국이 공산 괴뢰가 무단으로 점유한 금강산을 속히 되찾자는 다짐이라고 한다.



금강산이 세계유산이 됐지만 앞으로 가볼 기회는 더 적어진 것 같다. 북한은 2019년부터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을 배제했고 우리 자본과 기술로 지은 각종 시설들을 대부분 철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 통치자인 김정은이 재작년 말 선대(先代)와는 달리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창하고 나선 것은 남북 교류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만들었다. 사실 북이 이미 핵탄두와 투발 수단까지 보유한 이상 이제 대한민국과의 대화나 교류는 가치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도 김정은 정권은 관영 언론을 통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연일 강조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수신자는 미국이란 점을 점점 분명히 하고 있다.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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