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서 해외 게이머들의 독특한 플레이 문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RP 걷기(RP walk)'라고 불리는 문화로, 게임 속에서 정말 급할 때가 아닌 이상 절대로 뛰지 않고 오직 걷기만으로 플레이하는 것이다. 이들의 플레이 방식은 상당히 철저하다. 싸울 때도 걷기로만 싸우고, 경매장과 은행을 왔다갔다 할 때도 걷기로만 다닌다는 것이다.
그레이트 RP 워크 - 윈터스프링에서 실리더스까지(The Great RP Walk - Winterspring to Silithus )라는 영상에서는 윈터스프링의 다크위스퍼 협곡에서 실리더스의 안퀴라즈 성문까지 걸어가는 장면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담았다. 4시간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독특한 플레이 문화는 특정 게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와우, GTA, 레데리, 노맨즈스카이, 마비노기(북미), 파판14, 스카이림, 마인크래프트 등 걷기 기능이 있는 게임들이라면 무엇이든 이런 걸 즐기는 유저층이 꽤 존재한다고 한다.특히 오픈월드 게임에서 이런 플레이는 더욱 빛을 발한다. 넓은 맵을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게임 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빠른 진행보다는 몰입감을 우선시하는 이들만의 철학이 담겨있다.

"현실에서 달리며 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철학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렇게 느리고 답답해 보이는 플레이를 고집하는 걸까? 굳이 이렇게 느리고 답답하게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달리며 일 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그 세계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것처럼 플레이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이런 문화의 배경에는 서양 게이머들의 독특한 롤플레잉 문화가 있다. 서양 유저들은 RPG할 때 롤플레잉에 진심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 엔씨에서 런칭한 '시티 오브 히어로즈' 해외 서버에서 캐릭터 컨셉, 탄생 배경, 성장사 등등을 캐릭터 시트에 다 적어놓고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스킬 한번 쓰고 상용구 기능으로 필살기처럼 대사치거나, 일부러 슬랭과 사투리 쓰고, 기본적으로 자기가 직접 게임 속 세계 안에 들어가서 실제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플레이한다고 한다.

"파티할 때, 레이드할 때도 걸을 건가" 이해가 안되는 한국인들
이런 해외 게이머들의 플레이 문화에 대한 한국 게이머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와 진짜 몰입도가 다르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효율만 따지는데"라는 감탄 섞인 반응을 시작으로, "이런 게 진짜 게임을 즐기는 거 아닌가? 부럽다"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RPG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네"라며 서양 게이머들의 롤플레잉 철학을 높이 평가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실제로 경험해본 유저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스카이림 할 때 나도 가끔 이렇게 해봤는데 진짜 다른 재미가 있더라"며 직접 체험한 소감을 공유하는 게이머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은 레벨업, 아이템 파밍이 전부인데 문화가 다르네"라며 국내 게임 문화의 특징을 언급하는 댓글이 많았다. "우리나라 게이머들은 '시간 아까워서' 못할 것 같음"이라는 현실적인 지적과 함께, "빨리빨리 문화 때문에 이런 여유로운 플레이는 힘들겠다"는 아쉬움도 표출되었다. 특히 "효율충들이 보면 답답해 죽을 듯 ㅋㅋ"라는 댓글은 한국 게이머들의 효율 중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보고 싶다는 반응들도 속출했다.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아"라는 호기심 어린 댓글들이 이어졌고, "다음에 RPG 할 때 시도해볼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이머들도 나타났다. "마인크래프트에서 한번 해봐야겠네"라는 게임별 적용 방안을 제시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뛰기만 했는데 걷기로 해보고 싶어짐"이라며 새로운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반응도 많았다.
물론 현실적인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라며 시간 부족을 걱정하는 댓글이 많았고,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는 따라오는 애들이 답답해할 듯"이라는 현실적인 지적도 이어졌다. "파티 플레이할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실용적인 질문과 함께, "그래도 던전이나 레이드 때는 뛰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해외 이용자들의 플레이 철학은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어보면 'RPG니까'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 한 마디에는 그들의 게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게임은 클리어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이다. 빠른 진행보다는 깊은 몰입을, 효율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 그들만의 게임 철학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