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의 달인, 미국을 해부하다…'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연합뉴스
입력 2025-07-13 08:00:02 수정 2025-07-13 08:00:02
국내서 절판됐던 커트 보니것 장편소설 새롭게 번역 출간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표지 이미지[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이것은 빠르게 죽어가던 한 행성에서 외롭고 비쩍 마르고 꽤 늙은 백인 남자 둘이 만나는 이야기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의 장편소설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문학동네)는 도입부에서 이런 문장으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이 문장에서 지칭하는 두 백인 남성은 뉴욕에 사는 무명 SF(과학소설)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와 자동차 딜러 드웨인 후버다.

트라우트는 저질 잡지에 소설을 연재하며 부업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소설은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한 채 싸구려 잡지에 실려 세상에 나왔다가 몇 달이 지나면 잡지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후버는 자동차 딜러로 성공해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만, 아내가 우울증을 앓은 끝에 세상을 떠나고 동성애자인 아들도 집을 떠나 외로운 처지다. 홀로 남겨진 후버가 대화할 상대라곤 키우는 개 한 마리뿐이다.

차츰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던 후버는 우연히 트라우트의 소설을 읽고 깊이 빠져들고, 그런 후버가 사는 미들랜드시티에서 열리는 아트 페스티벌에 트라우트가 초청받아 참석하면서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상처받은 두 사람의 서로를 보듬는 서사가 기대되지만, 블랙코미디와 풍자의 달인인 보니것은 독자에게 그런 감동을 주는 대신 이 이야기를 통해 미국 사회를 낱낱이 해부하고 조롱한다.

특히 작가는 이야기의 배경인 미국을 무례할 정도로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이 말들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지만,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다. 미국의 모순, 더 나아가 인간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인간이 이 대륙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때(1492년)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사실 1492년에는 이미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그 대륙에서 충만하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1492년은 해적들이 그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죽이기 시작한 해일 뿐이었다."

"그들의 나라(미국)는 그 행성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센 나라였다. 그 나라는 대부분의 식량과 광물과 기계를 소유하고 있었고, 커다란 로켓탄을 쏘거나 비행기로 이런저런 것들을 투하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을 훈육했다."

커트 보니것 [문학동네 제공]

작가는 책의 첫머리부터 이런 전개를 예고하며 독자들에게 앞으로 무례한 말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10대 시절 그의 고용주였던 피비 허티라는 여성을 떠올리며 "피비 허티는 미국 역사와 유명한 영웅들, 부의 분배, 학교 등 모든 문제에 무례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제 나는 무례하게 구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서투르기 짝이 없지만. 피비 허티가 그토록 우아하게 보여주던 무례함을 흉내 내려고 계속 애쓰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중혁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야기로 해체시킨 다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글쓰기 기술은 새롭고 놀라운 동시에 읽는 사람을 정신 나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난 커트 보니것은 평생 거침없이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한 반항아다. 1952년 '자동 피아노'로 데뷔했으며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소설 '제5도살장'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73년 출간된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원서는 커트 보니것이 7번째로 펴낸 장편으로, 작가는 "이 책은 스스로에게 주는 쉰한번째 생일 선물"이라며 애착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돼 1999년 개봉했다.

국내에선 2000년대 초반 번역본이 나왔다가 절판됐으나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번역은 '모비 딕', '폭풍의 언덕', '위대한 개츠비' 등을 우리말로 옮겨온 황유원 번역가가 맡았다.

416쪽.

jae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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