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노동자 출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가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브라질은 사회복지를 강화했다. 대표적인 게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이었다. 아이들에게 예방접종, 건강검진,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게 골자였다. 세계적으로 그의 정책은 불평등 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룰라는 재선에 성공했고, 그다음 정권도 그의 후계자가 이어받았다.
그러나 좌파 정권의 종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좌파 시민단체에서 시작됐다. 시민단체 '무상대중교통운동'은 2013년 6월 상파울루시의 버스요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시청을 압박하려면, 이 도시에 약간의 혼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여러 단체와 연대했고, 여기에 전국적으로 200만명이 동참하면서 버스요금 인상을 막았다.
그러나 커진 단체는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고, 그 과정에서 좌파는 하나둘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자유브라질운동' 등 우파 단체가 장악했다. '무상대중교통운동'은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좌파의 실각과 우파의 집권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브라질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길을 걸어갔다.

영국 언론인 빈센트 베빈스가 쓴 '광장의 역설'(진실의힘)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 현장을 추적한 책이다. 12개 나라에서 200명이 넘는 활동가, 시위 참여자, 정치인 등을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저자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조사한 결과 "시위대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이를 '광장의 역설'이라고 칭한다.
시위자들의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수평적 구조를 지니고, 자발적이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2010년대 시위의 조직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특히 이 셋 중 '수평주의'에 가장 큰 이유가 숨어 있다고 분석한다.
가령 브라질의 '무상대중교통운동'은 '수평주의'의 전형적 예다. 이 단체의 설립 원칙 자체가 "모두 지도자가 되거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운동"이었다. 그러나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한다는 대의(大義)는 지도력의 부재로 이어졌다.
모두가 지도자이기에 누구도 조직을 대표할 수 없었고, 여러 조직이 모인 시위대를 대표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당연히 정부와 협상해 무언가를 결정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하려고 나서면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저자는 "조직은 효과적이며 대표성은 중요하다"면서 "집단행동은 입증된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으며 진정으로 집단적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조직적인 운동을 만드세요. 그리고 대표성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박윤주 옮김.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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