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후폭풍 '빌라 포비아'…전세 수요·신규 인허가 감소 여전
비아파트 보증 축소에 6·27 대출 규제까지 겹쳐 임대인 보증금 반환 비상
시장은 "6년 임대 효과 미지수…현실적인 수요진작 방안 필요" 지적도
비아파트 보증 축소에 6·27 대출 규제까지 겹쳐 임대인 보증금 반환 비상
시장은 "6년 임대 효과 미지수…현실적인 수요진작 방안 필요"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가 지난달 4일 다세대·연립(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6년 단기등록임대 제도를 부활한 지 한 달이 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 시큰둥한 모습이다.
빌라 투자 수요가 늘어야 신축을 통한 공급도 활발해질 수 있는데 전세사기를 거치며 깊어진 '전세 포비아(phobia·공포증)' 현상에 치솟은 공사비 등 현실적인 문제가 여전히 시장을 짙누르고 있다.
여기에 이번 6·27 규제로 전세 관련 대출까지 축소되면서 빌라 임대사업자들은 전세 보증금 반환에도 비상이 걸렸다.
비아파트 시장이 아파트 대체재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전세사기가 가져온 빌라 전세 '포비아'…6년 중기 임대로 부활 모색
과거 주택 등록임대사업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4년짜리 단기 임대가 도입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다주택자는 높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록 임대사업자가 됐고, 이 주택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없이도 임대료 인상폭이 5%로 제한돼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등록 임대사업이 다주택자의 투기를 조장하고 세금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2020년 7·10 대책으로 아파트의 등록 임대제도를 폐지했고, 비아파트도 4년 단기 임대 제도를 없애면서 10년 장기임대 제도만 남게 됐다.
정부가 지난달 비아파트의 단기 임대를 부활한 것은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시장이 초토화되면서 공급 위축이 심각한 상황에 놓인 때문이다.
서민 주거안정과 아파트로 쏠리는 주거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서는 비아파트 시장을 살려야 하는데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전국의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총 1만6천311가구(다가구주택 가구수 기준)로 지난해 동기간의 1만8천200가구에 비해 감소했다.
올해 1∼5월 서울의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총 2천232가구로 작년(1천361가구)보다 늘었지만 전세사기 문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2년 동기간(8천845건)이나 2020년 동기간(1만1천757가구)에 비해선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 도입한 단기 임대는 종전의 단기 임대인 4년과 장기 임대인 10년의 중간인 6년짜리로 사실상 '중기' 임대다.
등록 주택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세·법인세 중과배제 등의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6년 임대 의무기간 종료 후 또는 의무기간 중에 장기 임대로의 전환도 가능하다.
수도권 기준으로 건설형은 공시가격 6억원 이하·매입형은 4억원 이하, 비수도권은 건설형 6억원·매입형 2억원 이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전세사기 등 문제를 감안해 임대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 가입기준은 종전보다 강화했다.
연립·다세대 등 공동주택 기준으로 주택가격 산정시 130∼150%였던 공시가격 적용 비율을 125∼145%로 낮추고, 부채비율은 90%를 적용한다.
종전에는 9억원 이하 빌라의 임대보증을 가입하려면 전세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50% 이내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근저당권이 없더라도 '공시가격의 130.5%(공시가격의 145%×90%)'이내여야 가입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로 임대사업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빗장은 열었지만 주택가격 부풀리기를 통한 전세사기, 보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입 문턱은 높였다"고 설명했다.

◇ 빌라 전세 기피, 보증 축소, 높은 공사비…빌라 시장은 '삼중고'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장 비아파트 공급이 촉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공사비가 급등해 건설비용이 커진 데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임대 수요가 감소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활용한 신축이 어렵게 된 까닭이다.
'빌라 전세 포비아'가 여전한 상황에서 시장에선 높은 임대 보증금을 지불하려는 임차인이 없다는 것이다.
한 빌라 임대사업자는 "연립·다세대 등 빌라 건설업자는 대부분 자금력이 열악한 영세 사업자로 전세금을 받아 공사비를 충당하는데 전세사기 이후로는 신축 빌라라고 해서 높은 전세금을 내고 들어올 임차인은 거의 없다"며 "젊은층은 전셋값이 2천만원만 돼도 불안하다면서 월세 전환을 요구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한도 축소도 빌라 임대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전세사기로 인한 임차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가입 한도를 정하는 집값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40%에서 126%로 강화했는데, 이것이 임대인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성창엽 회장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은 임차인이 희망하는 경우 가입하는 선택 사항이지만 전세사기 이후에는 모든 빌라 임차인이 보증 가입을 요구해 사실상 필수 조건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입할 수 있는 전세 금액이 종전보다 낮아지면서 보증 가입을 위해선 그만큼 전세금을 낮춰주거나 기존 임차인에게 차액을 반환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기며 임대사업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시가격 외에 감정평가를 통한 주택 가격 산정 방식도 허용하고 있다.
집주인이 실제 집값에 비해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이의를 신청하고, HUG가 받아들이면 감정평가를 통해 집값을 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감정평가를 HUG가 사전에 정해놓은 5개의 감정평가법인에서 진행하면서 업계에선 평가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실제 수원과 화성의 임대사업자가 빌라 6건의 예비 감정을 진행한 결과 총 5건의 감정평가액이 공시가격의 121∼127% 선에서 산정됐다. '공시가격 126%' 기준을 적용한 것과 감정평가 결과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창엽 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아파트는 공시가격이나 감정평가 없이 KB나 한국부동산원 시세로 보증 가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공인 시세가 없는 연립·다세대는 시세보다 크게 낮은 공시가격과 감정평가에 의존하다 보니 실제 계약한 전세 시세보다 주택 가격 감정평가액이 낮은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며 "비아파트의 불합리한 시세 기준 적용으로 등록 임대사업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신규 사업자의 진입도 막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올해 임대사업자 보증 실적 4년 만에 최저…6·27 대출 규제까지 '설상가상'
이 때문에 주택 임대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대보증 발행 실적은 총 11만7천178가구로, 2021년 상반기(11만2천422가구) 이후 반기 기준으로 4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임대보증금보증은 2020년 8월부터 의무 가입 대상이 개인 주택임대사업자로 확대되면서 2021년 상반기 가입 실적이 11만가구를 넘어선 데 이어 2022년 상반기에는 14만8천370가구, 2023년 상반기는 16만9천759가구로 증가했다.
그러나 작년 상반기부터는 보증 발급 실적이 14만4천725가구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는 12만가구에도 못 미쳤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6·27 대출 규제는 주택 임대사업자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임대사업자들은 임대주택이 아닌 자가 주택을 담보로 생활안정자금을 받아 보증금을 반환해주는 전세퇴거자금으로 활용해왔는데, 유주택자의 경우 이 대출의 한도가 종전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되면서 보증금 반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마저도 2주택 이상인 경우에는 전세금 반환용 주택담보대출(전세퇴거자금대출)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주택 임대사업자들은 현재 보증 가입을 위한 비아파트 주택가격 산정에 KB국민은행 인공지능(AI) 시세를 인정해주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신력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빌라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수요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 '수요 증가→공급 확대'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예를 들어 신축 비아파트뿐만 아니라 무주택 또는 1주택자가 수도권의 기존 빌라를 매수할 때 취득세나 양도세 등의 세제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중소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빌라 신축이 활성화되려면 과거처럼 빌라 가격과 전셋값이 급등해야 하는데 이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빌라 사업자가 높은 공사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저리의 공사비 대출을 지원하고, 전세보증 집값 산정 방식을 바꾸는 등 대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m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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