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복·마스크 무장한 채 땀 뻘뻘…뼈에 담긴 '역사'를 찾아서
연합뉴스
입력 2025-06-18 10:05:28 수정 2025-06-18 10:05:28
월성 출토 개 유전자 연구 시작…DNA 분석 위한 시료 채취도 '엄격'
"과학적 분석·연구, 역사 해석에 큰 도움"…인력·예산 지원 필요


경주 월성 출토 개 연구를 위해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관계자들이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청정실험실에서 월성 남성벽에서 출토된 개 뼈를 분석하기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2025.6.18 yes@yna.co.k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아무래도 페트러스 본(petrous bone)이 낫겠죠?", "이미 부서진 부분이나 이빨 부분은 어떨까요?"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

세월의 흔적이 쌓인 듯 짙은 갈색을 띤 동물 뼈 앞에서 여러 의견이 오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1천800년 전인 3세기대에 경주 월성 인근에 묻힌 개의 흔적이었다.

동물 고고학 전문가인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가 귀 뒤쪽에 있는 딱딱한 뼈를 가리키며 "데옥시리보핵산(DNA)이 많이 나오는 부분"이라고 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주 월성에서 찾은 개의 모습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에서 공개된 월성 출토 개 뼈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3세기 사로국 시기에 의례를 지내며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뼈를 중심으로 월성 출토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2025.6.18 yes@yna.co.kr

임종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며 "가능한 (시료 채취를 위한) 훼손이나 손상이 없도록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강조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올해 첫발을 뗀 프로젝트는 과거 이 땅에서 함께 살아온 개에 주목한 연구다.

신라의 모체가 되는 사로국 시기인 3세기대에 의례를 지내면서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뼈를 중심으로 유전자를 분석·연구해 그 실체를 밝히는 게 핵심이다.

올해는 월성 남성벽에서 출토된 사로국 시기 개를, 내년에는 월성 해자(垓子·성을 감싼 도랑) 발굴 조사에서 찾아낸 개 뼈 500점 이상을 분석하는 게 목표다.

경주 월성 남성벽에서 나온 개 뼈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에서 공개된 월성 출토 개 뼈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3세기 사로국 시기에 의례를 지내며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뼈를 중심으로 월성 출토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2025.6.18 yes@yna.co.kr

김헌석 연구사는 "신라시대 토종 개의 유전학적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토종 개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 그 과정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온전한 형태의 뼈가 남아 있다고 해도 연구는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미생물에 오염되는 경우도 있고, 물리·화학적으로 손상되는 사례도 많다. DNA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까다로운 실험 절차와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에 연구소는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류덕영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등과 함께 머리를 맞대 시료 채취 방법 등을 고민했다.

경주 월성 출토 개 연구를 위해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관계자들이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청정실험실에서 월성 남성벽에서 출토된 개 뼈를 분석하기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2025.6.18 yes@yna.co.k

박종화 교수는 러시아에서 발견된 7천700년 전 고대인의 게놈을 국제 연구진과 세계 최초로 분석한 전문가로, 류덕영 교수와 '황금박쥐'로 알려진 붉은박쥐 연구를 한 바 있다.

박 교수는 "DNA는 가장 정밀한 데이터"라며 "뼈를 넘어서 신라 역사의 빈칸을 채우고 때로는 다시 쓸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중요한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직접 참관한 시료 채취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연구진은 모자가 달린 방진복을 입고 마스크, 장갑을 끼고 작업에 임했다. 연구소 건물에 마련된 청정실험실(클린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독이 필수였다.

유전자 분석·연구를 위한 준비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관계자들이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청정실험실에서 월성 남성벽에서 출토된 개 뼈를 분석하기 위한 시료를 채취하며 작업하고 있다. 2025.6.18 yes@yna.co.k

김 연구사는 개의 머리뼈를 조심스레 옮긴 뒤 일부를 절개해 시료를 채취했다. 이를 보조하던 관계자들은 작업 내용을 기록하며 시료가 오염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한낮 기온이 27도에 오르는 더운 날씨 속에 이들은 1시간 넘게 작업을 이어갔다. 임종덕 원장과 류덕영 교수는 작업 과정을 꼼꼼히 살피며 보완할 부분이 없는지 검토했다.

김 연구사는 "과거 동위원소 연대 측정을 위해 비슷한 부위의 뼈를 다룬 적 있었는데도 쉽지 않았다"며 "유전자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전자 분석에는 최소 몇 주, 길게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월성 출토 개 뼈를 살펴보는 임종덕 원장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임종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에서 월성 남성벽에서 출토된 개 뼈를 살펴보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3세기 사로국 시기에 의례를 지내며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뼈를 중심으로 월성 출토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2025.6.18 yes@yna.co.kr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나온 동물 뼈 등 각종 자료로 과거 환경을 연구하는 고환경 분야는 최근 주목받고 있지만, 관련 예산과 인력은 넉넉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연구소는 지난해 월성을 조사·연구하는 시설인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 안에 목제 유물, 동물 뼈, 씨앗 등을 연구·분석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작은 꽃가루부터 각종 뼈 등을 한자리에서 분석하고 보존 처리 및 보관까지 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를 전담하는 인력은 부족한 편이다.

경주 월성에서 출토된 동물 뼈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에서 공개된 월성 출토 동물 뼈 모습.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3세기 사로국 시기에 의례를 지내며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개 뼈를 중심으로 월성 출토 개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연구할 예정이다. 2025.6.18 yes@yna.co.kr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동물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학회를 꾸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소, 말, 닭 등 다양한 동물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 측은 "인력이 부족해 연구 외에 다른 업무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환경 연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임종덕 원장은 "첨단 과학적 분석과 연구는 문화유산 연구 분야에서 고고 역사적 해석을 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향후 다양한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주 월성에서 찾은 다양한 흔적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1일 경북 경주시 신라월성연구센터 숭문대에서 공개한 월성 출토 유물. 2025.6.18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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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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