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법정 스님의 말과 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파리의 노동자 피에르는 자동차 공장에서 해고를 통보받고 망연자실한다. 극심한 불황에 빠진 파리의 공장들은 아무 설명도 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브루노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분노한 브루노는 파리 상수도에 세균을 살포하고, 그의 계획이 성공해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혼란과 죽음의 공간이 된다. 정부와 경찰은 통제력을 잃고, 혼란을 틈타 공산주의자들은 세를 불리고, 종교인들은 종말론을 설파한다.
폴란드 출신 소설가 브루노 야시엔스키(1901∼1938)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1928∼1929년 프랑스 잡지 '뤼마니테'에 연재한 장편소설이 소설가 정보라의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야시엔스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시가 황폐해지는 충격적인 소설의 전개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독자에게 인간 본성에 관해 깊이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정보라는 '옮긴이의 말'에서 "수십 번이나 이 책을 읽었다"며 "이 책의 깊은 울림, 마음을 뒤흔드는 장면들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때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김영사. 404쪽.

▲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 강보라 지음.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강보라가 펴낸 첫 소설집으로 2021년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일곱 개 단편을 수록했다.
표제작은 유명인의 요가 강의를 들으려 인도네시아 휴양지 발리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 재아가 게스트하우스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문화재단에서 일하며 애매하게 미술계에 몸담은 재아는 미술상 아버지를 둔 남편 현오에게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런 남편의 영향으로 유명 예술가들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있다.
그런 재아는 발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젊은 한국인 여행자들을 은근히 멸시하는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수록작들은 인물들의 관계 속 미묘한 긴장감을 사실감 있게 투영하고, 이를 통해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현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빙점을 만지다'는 문학도의 꿈을 이뤄 문화적으로 풍요로우나 경제적으로는 궁핍한 동표가 한때 자기보다 더 문학을 사랑했는데도 어느새 속세에 물든 대학 선배 해규와 재회하는 이야기다. '직사각형의 찬미'는 부유한 삶을 꿈꾸며 낡은 빌라에 사는 주인공이 창문을 통해 비슷한 처지인 맞은편 빌라의 여자를 훔쳐보며 비록 가난하나 아름다운 삶을 흠모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문학동네. 328쪽.

▲ 법정 스님의 말과 글 = 법정 지음.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이 남긴 말과 글을 손글씨로 따라 쓸 수 있도록 구성한 필사책이다.
법정 스님이 남긴 저서에서 67개, 강연에서 71개 등 총 138개의 짧은 글을 발췌해 실었다. 이 글들을 나, 관계, 자연, 삶과 죽음, 무소유, 지혜, 종교, 책, 여유 등 9개 주제로 구분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무소유의 의미를 음미할 때 우리는 홀가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본문에서)
샘터. 384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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