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유혹, 유튜브·인스타…주의력이 상품화된 시대
연합뉴스
입력 2025-05-21 10:26:51 수정 2025-05-21 10:26:51
타인의 관심이 돈이 되는 '주의력 시대' 조명한 신간 '사이렌스 콜'


스마트폰 보는 학생들[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시간은 금이다.'(Time is money)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애초 프랭클린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라는 취지로 한 말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자본주의의 때가 묻으면서, 이 말은 이렇게 변주되고 있다. '남의 시간은 돈이 된다'고.

특히 스마트폰과 방송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는 더욱 그렇다. 테크 기업들은 정교한 기술로 사용자가 머무르는 시간에 값을 매겨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하고,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받은 타인의 관심(주의력)을 현금으로 전환해 부를 축적한다. 시청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독자들이 늘어날수록, 유튜버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이자 언론인인 크리스 헤이즈는 신간 '사이렌스 콜'(사회평론)에서 인간의 주의력이 상품화된 씁쓸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산업 시대가 노동을 상품화했다면 21세기 자본은 인간의 주의력을 상품화한다면서 인간의 주의력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현대를 '주의력 시대'(attention age)라 규정한다.

주의력 시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영국 대중지 '더선'(The Sun)의 사례다. 저자는 '더선'이 신문 한 부를 팔 때마다 손해를 보지만 구독자를 팔면서 광고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튜브 공연 [AFP=연합뉴스]

대중이 수많은 상업 매체와 인플루언서, 유튜버들에게 시선을 빼앗기다 보니 정작 관심을 두어야 할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령, 2023년 관광 목적으로 떠난 잠수정 타이탄호의 실종이 그랬다. 5명의 부자가 탄 잠수정이 갑자기 사라지자 다국적 구조대가 투입되면서 사건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수백명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탄 배가 지중해에서 전복된 비극적 사고는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비슷한 이유로 기후 위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주제다.

"주의력은 일종의 자원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며, 그 가치는 주목받는 자의 몫이다…이제 주의력을 끄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부를 쌓고 선거에서 승리하며, 심지어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주의력이 한정된 자원이 되다 보니 뉴스도, 정치도 점차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변한다. 흥미가 사실이나 진실의 자리를 꿰차기 일쑤다. 정치인들은 진실을 말하기보단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불쾌한 짓을 일삼고, 논점을 흐리며,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걸 서슴지 않는다. 이런 대표적인 '주의력 사냥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사회평론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자는 유튜버와 인플루언서, 황색 언론이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장악한 시대에 주의력을 빼앗기지 않기란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우스'에 등장하는 키르케 여신의 충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키르케 여신은 오디세우스에게 조언한다. 바다에서 아름답게 부르는 사이렌의 노래에 현혹되지 말라고. '주의하고, 또 주의하라'고. 하지만 주의만으로 사이렌의 유혹을 막을 순 없었다. 오디세우스 스스로가 묶은 결박이 없었다면, 오디세우스는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사이렌의 유혹에 넘어가 물고기 밥으로 최후를 마쳤을 공산이 크다.

알면서도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 내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강압에 의해서만 멈출 수 있는 것. 저자는 현대판 사이렌의 노래가 유튜브, 인스타, 각종 앱과 같은 인터넷 기반 콘텐츠 안에서 흘러 다니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박유현 옮김. 424쪽.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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