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스포츠뉴스 윤현지 기자) 영화 '파과'가 강렬한 여성 서사의 한 획을 그었다.
'파과'는 2018년 출판된 구병모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342 페이지(위즈덤하우스)의 어마어마한 분량을 2시간 내로 줄이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민규동 감독은 '파과'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영화는 소설 리듬과 다른 문법을 취할 수밖에 없고 2시간이라는 물리적 제한이 굉장히 크다. 이야기로는 8부작으로 트리트먼트를 다 했고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투우의 과거, 젊은 조각에서 나이 든 조각이 되는 40년에 걸친 이야기를 에피소드를 담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 한 줄을 한 에피소드로 확장할 수 있을 정도로 에피소드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소설은 이렇게 주인공들이 자주 만나지 않는다"라며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한 건 엔딩이었다. 한때는 전설적이지만 지금은 퇴물로 취급받고 있는 조각이라는 주인공이 30대 중년 남자와 맞부딪혀 자신만의 무술 실력으로 힘에는 밀리지만 공간, 지혜를 발휘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가져가는 지점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원작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설명했다.
구병모 작가는 영화를 보고 원작의 새로운 재미를 많이 칭찬했다고. 민 감독은 "세계관을 아예 갖고 계신 분이니까 뭐가 같고 다르지 이런 걸 많이 보셨을 것"이라며 "그래서 제가 '다섯 번 보면 영화로 보일 거다'라고 했고, 본인도 'N차 관람 하겠다'고 하더라.(웃음) 처음에는 '감사하다'는 문자를 저한테 보냈다. 아마 정말 여러 번 (영상화) 실패를 겪었고 그리고 이혜영이라는 배우로 조각이 탄생한 것에 압도되신 것 같다"라고 말을 전했다.

다만, 바야흐로 쇼츠의 시대. 90분대 영화가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가운데 짧게 압축된 '파과'의 다른 버전을 볼 수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러나 원작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영화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내용들을 꽉꽉 채워냈다.
60대 킬러라는 설정과, 평생을 킬러로 살아온 여성의 감정선이 섬세하게 담긴 이 작품은 '한국 소설에 가장 강렬하게 새겨질 새로운 여성 서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드라마 콘텐츠도 여성 중심 서사가 점점 확장되며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K팝은 걸그룹이 강세를 보이며 대중성을 사로잡았고, 구성원 전원이 여성인 예능도 증가했고, 메인 롤이 여성인 드라마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파과' 역시 레전드로 불리는 배우 이혜영을 제일 앞선에 내세우며 또 하나의 '레전드' 여성 서사의 탄생을 알렸다.
이에 대해 이혜영은 "'여자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한 인간이다. 캐릭터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물론 그간 여성 배우의 존재는 남자의 상대적 역할에 머무른 것이 많다. 그러니 주로 멜로를 하게 된다. 그래서 멜로에 적합하지 않은 여배우는 밀려났다. 코믹한 연기를 한다거나, 센 여성으로 그려졌다"며 "지금은 독립적이고 상대적 여성의 존재가 아니어도 할만한 롤이 많아지긴 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걸 기뻐해야 할까? 자존심 상하려고 한다"라며 "그와 별개로 여전히 우리는 멜로물의 여자 주인공에 대한 로망이 있고, 그걸 보고 싶어 한다. 저는 상대역이 없는 배우 중 하나였다. 제가 (배우로) 살아남은 이를 생각해 보면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이다. 여자라고 이름 지어지면 선입견이 되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민규동 감독은 "60대 여성 킬러가 등장하는 액션 누아르라고 생각했을 때 '만들어질 수 없구나, 불가능하구나' 여러 가지로 모두가 만류할 것 같은 프로젝트라 생각했고, 순간 굉장한 오기가 생겼다"고 '파과'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언급했다.
"조각 역이 몇 달 트레이닝으로 될 수 있는 얼굴과 이미지가 아니더라"며 해외 배우들까지 고려했다는 민 감독은 이혜영의 등장에 쾌재를 불렀다. "이혜영 배우를 만났을 때 이 영화가 태어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몸도 꼿꼿하고 눈빛이 10대 못지않았다. 그리고 카리스마와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있었다. 이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 오신 분 같았다"고 설명했다.
대본 리딩부터 수없이 두려워했고, 신체적 한계로 포기를 수도 없이 외쳤던 이혜영.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최대한의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민 감독은 "그런 공포의 에너지가 좋은 자세라고 생각했다"며 현장에 왔을 때 공간에 맞게 순발력을 발휘하는 등 연습량에 비해서는 타고났구나 싶었다. 얼굴이 아니라 몸 자체도 다른 후보가 없었구나 할 정도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설명하며, 이혜영이 만들어낸 '파과'가 어떻게 완성될 수 있었는지 증명해 냈다.
한편 이혜영, 김성철, 연우진, 김무열, 신시아 등이 출연한 '파과'는 현재 전국 극장 상영 중이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NEW
윤현지 기자 yh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