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큐브 25주년 특별전 참석차 내한…"한국 자주 와 외국 같지 않아"
"OTT 시리즈 재밌지만 5년간 영화만 할 것…한중일 배우 나오는 작품 구상"
"OTT 시리즈 재밌지만 5년간 영화만 할 것…한중일 배우 나오는 작품 구상"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한국에 제 팬이 많다는 건 놀랄 정도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 관객이 왜 제 작품을 좋아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자주 한국에 와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하하."
29일 서울 씨네큐브에서 만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가 한국이 아닐까 싶다. 이젠 외국에 왔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는다"며 웃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별전: 고레에다와 함께한 25년'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날 '우리가 극장을 사랑하는 이유'를 주제로 스페셜 토크에 나서고 오는 30일에는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한다. 내달 1일에는 영화 '브로커'(2022)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송강호, 이주영과 함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2018)을 주제로 '씨네토크'에 참여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씨네큐브는 지금까지 제 작품을 한국에서 상영하며 큰 신세를 진 곳"이라면서 "마침 최근 작품의 촬영이 끝나 고마웠던 분들을 다시 만나러 왔다"고 했다.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고레에다 감독이지만,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빡빡한 촬영 스케줄 탓에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브로커' 주연 배우 아이유의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이제 막 시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전작인)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의 촬영감독이 한국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서 아이유가 얼마나 대단한지 설파했다"며 "그분이 '폭싹 속았수다'도 꼭 봐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 일본의 극장에서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과 장재현 감독의 '파묘'를 봤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서울의 봄'을 보고서 (김성수 감독이) 힘 있는 감독이라 생각했다. '파묘'도 관람했는데 세계관이 참 독특했다"며 "(한국 극장가가) 침체기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좋은 작품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새로운 감독이 등장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지적은 다음 달 열리는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장편 영화가 한 편도 초청받지 못한 상황과 맞물려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반면 일본은 총 6편의 장편 영화가 다양한 부문에서 고루 상영된다.
"일본에선 감독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고지, 하야카와 치에…. 차세대 감독이 발굴되는 건 일본 영화계에 고무적인 일이에요. 저 역시 응원하는 한편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일본 영화계가 끊임없이 신진 창작자를 배출하는 이유로 작은 영화관의 힘을 꼽았다.
코로나19 이후 아트하우스와 소규모 극장이 위기에 처하자 일본의 영화 팬들은 십시일반 모금에 나섰고, 이를 전국의 극장에 배분했다. 이에 독립·예술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이 계속해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은 변화가 느린 편이라 창작자들이 한꺼번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휩쓸려가지 않은 측면도 있다"며 "극장용 영화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보니 젊은 작가들도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일깨워주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연출한 뒤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게 (관객에게) 성가신 행위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연속극에 꼭 도전하고 싶었던 그는 2023년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올해에는 '아수라처럼'을 선보였다. 시리즈물이지만 그간 영화를 통해 만났던 고레에다표 가족애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시리즈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향후 5년간은 영화만 하고 싶다"며 "일본·한국·중국 배우가 나오는 작품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아동, 위기가정, 미혼모,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가족을 내세우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주제를 정해놓고 만들기보다는 "그때그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이야기로) 부풀려가는 형태로 작업한다. 그게 제 영화의 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어느 가족'의 칸영화제 출품 당시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인비저블 피플'(invisible people·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키워드로 작품을 소개했다"며 "존재하지만, 모두가 보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을 담는 영화를 몇 작품 해온 것 같기는 하다"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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