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반 고흐의 삶이 아무리 극적이었다고 해도, 비상한 재능이 없었다면 극적인 삶의 감정들을 그토록 강렬히 전달해 낼 수 있었을까? 그의 특별함은 그가 재현해 낸 인간의 비극이 아니라, 자신의 강렬한 감정과 불길함을 그대로 전해 주는 남다른 능력에 있다."
영국의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마이클 페피엇은 신작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디자인하우스)에서 예술작품 속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내밀한 고통과 열망, 집착, 갈망을 포착한다.
60여년간 평론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예술가의 예민한 감수성과 사회적 고립, 창작의 고통과 인간적인 허물을 지켜본 저자는 반 고흐, 프랜시스 베이컨, 살바도르 달리, 발튀스 등 20세기 대표 예술가 27인의 내면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저자는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자서전'이라고 정의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의 성장 배경, 성격, 병력, 연인 및 후원자와의 관계, 전쟁과 정치 상황 등 삶의 모든 요소가 응축돼 있다는 의미다.
고흐의 삶이 저자의 이런 철학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한다. 저자는 고흐는 자신의 다양한 생각과 기분을 거의 순간순간 포착해 일기를 쓰듯이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한다. 자신이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직감한 고흐는 간단한 스케치와 드로잉으로 자기 삶을 기록하는데 온 열망과 에너지를 쏟아부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아일랜드 화가 베이컨의 공포감이 짙은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동성애자로서의 소외감에서 비롯됐고, 달리의 도발적인 에로티시즘은 유년기의 결핍과 깊이 맞물려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평론가로서의 냉정한 시선과 친구로서의 따뜻한 애정을 교차하며 예술가들을 바라본다. 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숭배'가 아니라 '진실한 응시'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 화가 발튀스의 초기 작품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후기 작품은 '기교에 치중한 얕은 그림'이라고 평가절하한다. 달리에 대해선 "재능보다 자기 연출이 앞섰다"는 냉소적인 시각도 드러낸다.
작품 분석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 그 자체로서 예술가들의 삶도 생생하게 그려낸다.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눈 카페의 공기, 화실에서 마주한 붓과 캔버스의 질감 등을 떠올리며 위대한 예술가들의 진짜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정미나 옮김.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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