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겉절이는 김치의 한 종류지만,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만들어 먹는 생김치다. 신선한 채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어 입맛이 떨어지기 쉬운 봄철에 특히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담그는 과정이 간단하고 시간도 많이 들지 않아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겉절이는 발효된 김치의 강한 맛과 특유의 질감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간장을 활용한 부추겉절이는 샐러드처럼 간편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어 김치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도 좋은 첫걸음이 된다. 그중에서도 부추는 예부터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자라고 자주 사용되던 겉절이 재료다.

특유의 향과 알싸한 뒷맛이 식욕을 자극하고, 몸에 좋은 효능도 많아 사랑받아 왔다. 부추는 기운을 북돋아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채소다.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에도 효과가 뛰어나며, 간과 위장, 신장 기능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부추에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활성산소를 억제해주는 항산화 작용이 뛰어나다. 이 성분은 세포 노화를 늦추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냉증이 있거나 배가 자주 차고 설사를 잘하는 사람에게도 부추는 좋은 식재료다.

꾸준히 섭취하면 정력이 좋아지고 허리에 힘이 생기며, 숙면을 돕고 야간에 자주 소변을 보는 증상도 완화할 수 있다. 부추의 알싸한 향을 내는 '유화알린'이라는 성분은 체내에 들어오면 자율신경계를 자극해 에너지 대사를 활발하게 해준다. 덕분에 피로 해소에도 도움이 되며, 몸의 기운을 빠르게 되살리는 데 효과적이다. 예로부터 부추는 강정(强精), 강장(强壯) 식품으로 여겨졌다.

동의보감에도 부추가 흉통(가슴 통증)이나 심장 부위의 급성 통증과 그 통증이 어깨까지 퍼질 정도로 심할 때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의 의학적 언어로 풀자면, 부추는 심장과 순환기에 도움이 되는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 어머니와 함께한 겉절이의 추억

어린 시절, 겉절이는 필자에게도 추억이 많다. 겉절이와 함께 한 밥상은 시간과 계절이 버무려진 한 상이었다. 김장 김치가 바닥나고, 시큼하게 익어버린 신김치 맛에도 점점 입맛이 시들해질 무렵이면, 어머니는 어느새 봄을 알아차리셨다.

긴 겨울을 이겨낸 텃밭의 부추가 손 한 뼘 길이로 올라온 그날,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오늘은 부추겉절이를 맛있게 만들어 먹자."

어머니는 봄 부추는 예로부터 인삼이나 녹용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 효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다. 겨우내 지친 가족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으셨던 걸까. 어머니는 바구니 하나 가득, 연초록 부추를 정성껏 잘라 오셨다.

마당 우물가에 앉아 부추를 여러 번 헹구고, 물기를 털어 바구니에 담는 손길이 어찌나 정갈했던지, 마치 봄을 씻어내는 듯했다. 그리고 부추겉절이의 시작은 언제나 양념장이었다.
필자의 기억에 당시 어머니가 부추 1㎏ 정도에 맞게 준비하신 양념장은 다음과 같았다.
밀가루 반 국자, 고춧가루 한 국자(약 50g), 새우젓 반 국자(약 25g), 다진 마늘 반 국자, 조선간장 약간, 통깨와 참기름이었다.
"먼저 풀을 쑤자."
어머니는 아궁이에서 꺼낸 숯불을 화롯불 위에 올려놓고, 작은 양은 냄비에 밀가루와 물을 넣어 멍울지지 않게 곱게 풀었다. 나무 주걱으로 조심스레 저어가며 끓이던 그 풀은, 투명하게 변하는 순간 불에서 내려 식혔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의식을 치르듯 정중했다. 풀이 식으면 고춧가루와 마늘, 새우젓을 넣고 고루 섞는다. 고춧가루가 붉은 물을 머금고 고와질 때까지, 어머니는 조용히 기다리셨다.
그 사이, 부추는 먹기 좋은 4㎝ 길이로 썰려 양재기에 담겼고, 완성된 양념과 함께 버무려졌다. 마지막 간은 조선간장으로 맞추며 어머니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옛 성현들이 말했단다. 봄의 기운은 인체의 간(肝)에 상응한대. 간이 흥분하면 울화가 올라오고, 사람도 덩달아 짜증이 많아지고 마음이 불안정해져. 봄날의 더위는 양기를 자극하고, 위장이 약한 사람은 열이 위로 올라가 설사나 위염을 일으키기도 하지. 그러니 봄에는 간을 다스리고 위장을 편안히 해주는 음식이 참 중요해."
그러므로 부추는 그런 봄날에 꼭 필요한 채소라고 하셨다. 열기를 가라앉히고, 습기를 몰아내며, 신장의 기운을 도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고마운 식재료다. 그래서 봄 부추를 먹으면 고혈압이나 심혈관질환, 뇌혈관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숟갈, 고소한 통깨를 듬뿍 넣고 조심스레 손끝으로 버무리셨다. 어머니 손에서 완성된 부추겉절이는 싱그러운 봄 그 자체였다.
곧이어 가마솥에서 갓 지은 밥이 김을 뿜으며 밥상에 올라오고, 봄날의 건강 밥상이 완성됐다. 어머니의 마음과 계절의 흐름이 가족을 향한 사랑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태어난 음식이 바로 어머니의 겉절이었다.
◇ 손자병법으로 본 겉절이 만들기
손자병법 '작전(作戰)의 장'에서 손자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와 자원의 중요성, 전쟁을 오래 끌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핵심은 효율적인 자원 운용, 속전속결의 필요성, 자원의 공급과 소비에 대한 치밀한 계획이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겉절이의 성격과 재료를 조화시켜 엮어 비교해봤다.
겉절이는 마치 단기전에 임하는 장수처럼, 빠르게 무쳐서 신선할 때 바로 먹어야 하며, 제철 채소를 자원으로 삼아 순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밥상 전략'이 필요하다.
손자는 전쟁은 길게 끌면 병사와 백성도 지치고 국력이 고갈된다. 그러하니 장수는 빠르게 결단하고 신속히 전장을 수습해야 한다고 했다. 식탁 위의 밥상에 이런 작전이 필요할 때가 바로 겉절이다.
겉절이는 장기전(長期戰)이 아닌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음식이다. 오래 발효시켜야 하는 김치가 아니다. 전장을 오래 끌지 않는 손자의 지혜처럼, 제철 채소를 활용해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맛을 끌어내며 빠른 효율을 추구하는 전략적 음식이다.
자원의 효율적 운용을 뜻하며 겉절이용으로는 여러 가지 채소가 있다.
겉절이용 제철 채소를 손자병법에 나오는 군부대로 대조해보면 봄동은 척후병이다. 추위를 이겨내고 자란 단단한 잎은 생명력과 면역력을 북돋운다.
부추는 후방 보급병이다. 따뜻한 기운으로 속을 덥히며 피로를 푸는데 탁월하다.
달래는 매서운 향으로 기세를 꺾는 척후 정찰병이다. 입맛을 돋우고 간을 보호한다.
상추는 작전병이다. 쌉싸름한 맛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열을 내려주는 냉각 기능이 탁월하다.
돌나물은 수분 보급병이다. 풍부한 수분으로 갈증을 해소하며 이뇨 작용을 돕는다.
무는 전장의 기둥인 중장보병이다. 소화력 증강과 해독 작용으로 중심을 잡는다.
얼갈이배추는 부드러우나 단단한 근위병이다. 소화 촉진과 비타민을 공급한다.
열무는 봄철 기세를 올리는 기병이다. 섬유질이 풍부해 장 건강을 책임진다.
시금치는 보급관이다. 풍부한 철분으로 피로 해소와 혈액 생성을 돕는다.
쑥갓은 향기로운 전령이다. 진정 효과와 면역력 강화로 후방을 지킨다.
풋고추는 포병이다. 매콤한 맛으로 순식간에 전세를 뒤집는다.
셀러리와 파슬리는 외국 용병이다. 해독 작용과 다이어트 효과로 전장의 균형을 맞춘다.
손자는 작전이란 병사를 신속히 움직이고,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투를 단시간 내에 승리로 이끄는 일이라고 했다. 겉절이 역시 그렇다.
발효를 기다리지 않고, 최적의 타이밍에 바로 무쳐 즉시 먹는다. 양념은 무기요, 젓갈은 지휘관이며, 손맛은 전략이다. 이 모든 조화가 깃들어야 비로소, 겉절이라는 승리의 식탁이 완성된다.
◇ 김치의 뒤를 이은 새로운 K-푸드
우리나라 겉절이는 예로부터 김치와 함께, 각 지역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를 활용해 발전해온 현재 진행형 음식이다.
절이지 않고, 살짝 간만 맞춰 무쳐내는 겉절이는 발효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생채 개념의 김치라 할 수 있다. 오랜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김치와 달리, 겉절이는 제철 채소에만 있는 찰나의 신선함을 담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겉절이는 단연 배추겉절이다. 특히 봄철, 묵은김치가 바닥나거나 신김치의 맛에 질릴 무렵에 제철 배추의 싱그러움을 담아 식탁 위에 올린다.
부드럽고 연한 배춧잎이나 속대만을 골라 잘 절인 뒤 물기를 빼고 먹기 좋게 찢는다. 여기에 불린 고춧가루, 채 썬 고추, 쪽파, 다진 마늘, 젓갈을 넣고 곱게 버무린 후, 간장과 설탕, 참기름, 통깨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이렇게 완성된 배추겉절이는 발효 없이도 신선하고 깊은 맛을 낸다. 봄동 겉절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봄동은 배추보다 잎이 두툼하지만 어리고 연하며 아미노산이 풍부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고 특유의 진한 향이 살아 있다.
양념장에 즉석으로 무쳐내면 입 안 가득 봄의 향긋함이 퍼지고, 면역력도 높여주는 봄철 건강식이 된다. 봄동은 긴 겨울 끝자락, 밥상에 먼저 찾아오는 '봄의 전령사'다.
지금, 겉절이는 국경을 넘고 있다. 한류의 물결을 따라 세계에 전해진 K-푸드 속에서, 겉절이는 생기 있고 경쾌한 맛으로 외국인의 식탁을 사로잡고 있다.
겉절이는 한국의 전통 반찬을 넘어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음식으로 성장했다. K-푸드 열풍 속에서 겉절이는 새로운 반찬으로 각인되며, 다양한 레시피로 재창조되고 있다.
각국의 식재료와 입맛에 맞게 변화된 겉절이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아보카도와 함께 무쳐낸 겉절이가 인기를 끌고 있고, 유럽에서는 올리브 오일과 허브를 더해 지중해의 향기를 품은 겉절이가 탄생했다.
겉절이는 반찬을 넘어서 융합된 하나의 문화가 됐다. 우리의 입맛과 삶의 방식이 담긴 작고도 깊은 음식 문화다. 또한 겉절이는 계절의 감각을 담고 즉흥적인 조화로움을 지닌 음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고유한 맛과 영양으로 수많은 이의 밥상에서 사랑받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 식탁의 품격과 멋, 그리고 살아 숨 쉬는 계절의 맛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더욱 빛날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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