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재임 시절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보안용 휴대전화인 비화폰을 지급받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안부가 국회에 낸 답변서에서 이를 밝혔다. 역대 행안부 장관 중 비화폰을 사용한 사람은 이 전 장관이 유일하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이자 현 정부 실세로 꼽히는 그의 비화폰 사용은 그만큼 비밀통화할 일이 많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을 모의했다는 의혹으로 탄핵소추 위기에 몰리자 자진 사퇴했고, 내란 혐의 등으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비상계엄에서 주요 역할을 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화폰을 썼다는 점에 비춰 이 전 장관도 계엄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비화폰은 통신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도청당하지 않도록 암호화된 기술을 적용한 전화기다. 통상 정부와 군, 기업 등 보안이 중요한 기관에서 사용한다. 특히 군대나 정보기관에서 국가 기밀이나 민감한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주로 쓴다. 그러나 통화 기록이 남지 않는 특성 때문에 정보 은폐 시도나 권력 남용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비화폰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은 비화폰을 통해 군과 경찰 고위 간부들에게 계엄령 관련 지시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 때문에 비화폰이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을 밝혀낼 핵심 증거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과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비상계엄 관련 수사 기록과 국회 증언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고교 후배로 계엄 계획 수립과 실행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여인형 방첩사령관을 비롯해 국회 등에 실제 병력을 동원한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과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비화폰으로 계엄 선포를 전후해 윤 대통령 등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선포 당일 긴박했던 순간에, 3군을 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 지하 벙커 전투통제실에서 양손에 비화폰을 들고 "명령 불응 시 항명죄로 다스린다"며 계엄에 가담한 사령관들을 독려한 사실도 드러났다.
계엄 선포 몇 시간 전 윤 대통령과 '안가 회동'을 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도 비화폰을 사용했다. 조 청장은 경호처가 지급했던 비화폰으로 계엄 당일 윤 대통령과 6차례 통화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과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는 지난달 17일 조 청장이 윤 대통령과 통화할 때 쓰던 비화폰 통신 기록이 저장된 경호처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김 청장은 계엄 당시 비화폰으로 김 전 장관과 통화한 사실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경호처는 지난해 11월 김 청장에게 비화폰을 줬고, 김 청장은 계엄 해제 후 비화폰을 반납했다고 한다.
이 전 행안장관과 경찰 수뇌부가 경호처가 지급한 비화폰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이상 경호처가 관리하는 비화폰 서버에서 통화 내용 같은 핵심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또한 경호처의 벽에 가로막힌 상태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박종준 경호처장은 '10일 오전 10시까지 출두하라'는 경찰의 3차 출석요구까지 받았지만 태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체포영장 2차 집행을 앞둔 공조수사본부의 선택이 남았다.
bond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