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참사' 홍콩아파트 공사 부패 조사…"화재경보 꺼져 있었다"(종합)

(서울=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77년 만에 발생한 홍콩 최악의 화재 참사로 꼽히는 '홍콩 웡 푹 코트 아파트 화재'와 관련해 관계 당국도 신속히 수사에 착수했다.
40년 넘은 노후 공공아파트에서 진행한 리노베이션(보수)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1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다수의 관계자가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현지매체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홍콩 반부패 수사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는 화재가 난 홍콩 북부 타이포 구역 '웡 푹 코트' 아파트의 보수공사 진행 과정에 대한 부패 조사에 착수했다.
불이 난 2천가구 규모의 32층짜리 이 아파트단지는 1983년 준공됐으며 안전상 이유로 규정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외벽을 포함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보수 공사의 비용은 3억3천만홍콩달러(약 621억8천만원)이며, 가구당 분담금은 16만∼18만홍콩달러(약 3천만∼3천300만원)로 알려졌다.
수백억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법규를 위반해 화재에 취약한 자재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이 과정에서 비용을 남기기 위한 조직적 비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들여다볼 것으로 관측된다.
홍콩 당국은 해당 업체의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AP와 SCMP 등은 업체명을 '프레스티지 건설&엔지니어링'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공사업체 책임자들이 체포되는 등 강제 수사도 개시됐다.
염정공서가 이날 보수공사의 엔지니어링 컨설팅 기업의 이사 2명을 체포했다고 중국중앙TV(CCTV)가 보도했다.
구룡(카우룽)에 있는 해당 업체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전날에는 홍콩 경찰이 오전 아파트단지 건물 관리회사를 압수수색했으며 아파트 보수공사 업체 책임자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체포했다.
업체 이사 2명과 엔지니어링 컨설턴트 1명이 붙잡혀 조사받고 있다.
이번 화재는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대나무 비계(건설현장에서 고층 작업을 하기 위해 설치하는 임시 구조물)와 공사용 안전망을 타고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아파트 8개 동 중 7개 동이 탔으며, 화재 발생 24시간이 지나도 진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비계 재료로는 통상 금속이 사용되지만 홍콩에서는 아직도 대나무가 쓰인다. 당국은 화재·사고에 취약한 대나무 비계를 단계적으로 퇴출한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또한 촘촘한 그물로 된 안전망이 난연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면서 관련 담당자와 업체들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인화성이 강한 스티로폼 자재가 외벽과 창 등을 덮고 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사업체 측에 화재를 확산시킨 과실이 큰 것으로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회사 책임자들이 중대 과실을 저질렀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로 인해 이번 화재가 발생하고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번져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공사 현장에 대한 화재 위험성 경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사전에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것은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이 업체가 안전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SCMP는 홍콩 노공처(고용노동부에 해당)의 기록을 토대로 화재가 발생한 단지의 보수공사 관련 안전점검이 16차례 이뤄졌고, 3차례 경고가 발령됐다고 전했다.
화재 발생 불과 6일 전인 지난 20일에도 화재 예방 조치를 강화하라는 경고가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업체가 과거 진행한 공사 현장에서도 안전 위반 혐의로 2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고 SCMP는 덧붙였다.
이번 화재로 인해 이 업체가 진행 중이던 툰문에 위치한 민간 주택단지인 '엘레강스 가든'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가 중단됐다.
아파트단지 관리소 측은 이날 안전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재 경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피가 늦어졌고 이 때문에 인명피해가 커졌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화재 발생 직후 주민들이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이어 화재경보기가 애초에 꺼져있었다는 전직 직원의 증언도 현지 매체들에 의해 보도됐다.
해당 아파트단지에서 지난해 보안 담당 직원으로 근무한 적 있다는 그는 단지 전체의 소방 경보 시스템이 완전히 꺼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자들의 출입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방화문이 오랫동안 열려있었고 작업자들이 비계 위에서 흡연하는 모습도 수차례 목격했다면서 이번 참사에 대해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했다.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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