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가 원한 反이민정책, 동맹도 투자자도 예외 없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 체류자 단속 과정에서 무더기로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들이 정부 협상을 거쳐 11일(현지시간) 풀려났지만,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안심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불법 이민을 차단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인을 상대로 강도 높은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런 기조하에 한국인 노동자처럼 미국 경제에 이로운 투자 활동을 하는 동맹국 국민까지 덩달아 피해를 보는 형국이다.
지난 4일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된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 기조에 한국이 희생된 측면이 있다.
미국 당국은 체포된 이들 중에는 미국에 불법 체류하거나,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통해 입국하고서는 금지된 노동을 하는 등 체류 자격을 위반한 이들이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혐의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미국 당국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인들이 자진 출국 형식으로 풀려난 만큼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다툴 수는 없게 됐지만, 300여명 전원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체포된 한국인 다수는 B-1 비자와 비자 면제(ESTA)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B-1 비자와 ESTA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활동했다는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미국 당국이 공장을 급습할 때 법원에서 받은 수색 영장은 수색 대상 인물로 4명만 적시했는데 그중 한국인은 없었고 모두 히스패닉계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이민 당국이 히스패닉계 불법 체류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단속에 나섰다가 현장에서 B-1 같은 단기 비자나 비자 면제(ESTA)로 입국한 한국인 노동자를 다수 발견하고 같이 체포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연행된 이들 중에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도 있었다는 사실은 이민 당국이 혐의를 따지지 않고 일단 체포에 급급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민 당국의 이런 마구잡이식 체포는 이전에도 미국 내 여러 단속 현장에서 논란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도한 단속 목표를 세우고 실적을 압박한 탓에 이민 당국이 범죄 기록이 없는 단순 불법 체류자는 물론이며 영주권자, 합법적인 비자 소지자까지 체포해 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주도하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 5월 이민세관단속국(ICE) 회의에서 하루에 3천명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된 바 있다.
3천명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100일 동안 하루 평균 체포자 수(665명)의 4배가 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연간 100만명 추방을 달성하고자 이민 단속 요원들을 강하게 압박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압박 때문에 이민 당국은 최근 현대차-LG엔솔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같이 '건수'를 크게 올릴 수 있는 대규모 사업장과 건설 현장을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이민 당국은 한국 배터리 공장 단속과 같은 날인 지난 4일 뉴욕주의 제과공장을 급습해 57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차르'인 톰 호먼은 지난 7일 CNN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국 기업 건설 현장에 대한 단속과 유사한 대규모 단속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국인이 이민 당국에 구금되는 일은 사업장 밖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 유타주에서 활동해온 바이올리니스트 존 신씨, 텍사스주의 A&M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아온 김태흥씨, 뉴욕 이민법원에 출석했다가 체포된 고연수씨 등 미국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으로 활동해온 한국인들이 최근 잇달아 체포된 사례는 미국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런 강경 단속 기조가 앞으로 달라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 공화당원이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정책이 불법 이민 차단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인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문직 취업비자 같은 합법적인 경로로 들어와 취업하는 외국인에게조차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그동안 대체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외국인 노동자를 경계하는 점은 마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지아주 지역 노조원들은 한국 기업들이 공장 건설 과정에서 노조원에 일감을 더 맡기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으며 이번 단속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노조원들은 투표 참여율이 높은 계층이라 미국 정치인들이 이들의 입장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한국인들이 풀려났다고 해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기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우리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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