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폐지 줍는 어르신들, 폭염·폭우 속 힘겨운 여름나기

(대구=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는 궂은 날씨 탓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이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행정당국은 어르신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폭염 키트나 가벼운 리어카를 나눠주는 등 대책을 펼치고 있다.
7일 오전 10시께 대구 북구 침산동.
김모(77)씨는 이른 아침부터 길거리에 나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고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려고 모자와 토시, 머리띠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리어카 손잡이 한쪽에 매달린 비닐봉지 안에는 집에서 직접 얼려온 얼음물 3병이 들어있었다.
그는 "차라리 겨울이 낫다"며 웃었다.
이날 김씨의 목표는 낮 기온이 가장 높은 오후가 되기 전 목표치를 채우는 것.
김씨는 인도와 차도를 분주하게 넘나들며 일대 아파트, 상가건물을 돌며 폐지를 주웠다.
1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김씨의 이마와 목덜미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의 낡은 리어카에는 이미 폐지가 허리 높이만큼 쌓여있었다.
그런데도 김씨는 쉴 새 없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찾아 다녔다.
오후가 되기 전에 목표치를 채우려면 점심 먹는 시간도 아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대구는 오전 11시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치솟았지만, 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폐지가 가득 쌓여있는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그는 가게 한쪽에 가득 쌓여있는 박스를 하나씩 손으로 주운 뒤 테이프를 떼고 리어카에 실었다.
박스는 전날 내린 비로 흠뻑 젖어 흐물흐물해진 상태였다.
김씨는 "비 내리고 나면 박스가 매우 무거워진다"며 "또 비에 젖은 폐지는 고물상에서 반값만 쳐주기 때문에 더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스가 젖어있으면 리어카에 싣기도 힘들다"며 흐물흐물해지고 찢어진 박스를 가리켰다.
김씨는 자기 키 높이만큼 리어카에 폐지를 쌓은 뒤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반은 녹아버린 500㎖ 얼음물을 꺼내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키며 타오르는 갈증을 달랬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한 폐지 수집 노인 전수조사 결과 지역에 폐지를 줍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은 모두 1천18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기초생활 수급자는 379명, 장기요양등급자는 6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는 무더위 속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토시, 안전 야간 띠 등 1천여명분의 안전 장비를 나눠줬다.
달서구의 경우 기존 리어카보다 가볍고 조작이 편리한 경량형 리어카 25대를 전달하기도 했다.
hsb@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