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타락하지 않는 인생은 가능한가."
지난해 제18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을 받은 소설가 무경이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를 비롯해 4개의 단편을 묶은 연작소설집 '부디 당신이 무사히 타락하기를'(나비클럽)을 출간했다.
지난달 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공개돼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 책은 스스로 '악마'라 칭하는 화자를 통해 인간의 타락을 서늘하게 들여다본다. 악마는 인간의 내면을 비틀고, 신념을 흔들면서 종국에는 가장 일상적인 악마성을 끌어낸다.
네 단편은 한국전쟁, 휴거 소동, 6.10 민주 항쟁, 유신시대 등 한국 현대사를 하나씩 배경으로 삼는다. 인간성이 흔들리는 시대에 악마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인간을 타락시키는 모습을 그린다.
악마의 첫 유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지리산 자락에서 일어난다. 정찰에 나선 3명의 국군은 외딴 민가에서 만난 할머니와 며느리, 갓난아기의 목숨을 두고 딜레마에 봉착한다. 악마는 총구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이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1992년 휴거 소동에도 악마가 개입한다. 휴거 소동 직후 폐쇄된 사이비 교단의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믿음과 광신 사이에서 감당하기 힘든 참극이 벌어진다.
악마는 이어 1987년 한 폐광으로 이동한다. 금괴를 찾아 폐광에 들어간 인간들이 감춰뒀던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곧바로 악마가 개입해 영혼의 거래를 시도한다.
마지막에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절로 돌아간다. 누군가가 희생해야 다른 누군가가 생존한다는 '트롤리의 딜레마'에 빠진 용의자들에게 악마가 접근하면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들 소설은 이야기 속 이야기, 등장인물의 심리와 윤리적 충돌,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남는 의심 등 미스터리 장르의 가장 정통적인 기법을 충실하게 구현한다.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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