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다들 담담하다. 불안도,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평온한 눈으로 죽은 사람을 구경만 하고 있다."
지난달 3주차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소설집 '혼모노'의 작가 성해나 등 5명의 젊은 작가가 참여한 앤솔러지(선집) '끼리끼리 사이언스'(넥서스출판사)는 제목부터 강한 역설을 담고 있다.
유사한 존재들끼리 모이고 어울린다는 의미의 '끼리끼리'는 따뜻한 연대와 공감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차이를 배제하는 은근한 폭력의 기제로도 작용한다. 책은 그 이중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서사와 감정으로 풀어낸 5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됐다.
성해나의 '윤회 (당한) 자들'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사이비 종교에 접근하며 겪는 혼란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윤회라는 소재를 둘러싼 허구와 진실, 욕망과 패배가 날카롭게 교차하며,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개인의 윤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2020년 '실천문학'을 통해 데뷔한 권혜영의 '럼콕을 마시는 보통 사람들'은 전통적 가족 형태 바깥에 있는 두 명의 입양아가 음악이라는 감각의 연대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동성 부부에게 입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보다 '보통'이 되고 싶었던 이들의 욕망을 따뜻하게 포착한다.
성혜령의 '임장'은 부동산 재테크 모임이라는 일상적 배경을 통해 현대인의 고립과 소통 부재를 들여다본 작품이다. 지난해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가는 '자기만의 집'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끝내 이어지지 못한 감정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2019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이주란은 관계의 상실과 새로운 인연에 대한 희망을 고요한 감성으로 풀어낸 '산책'을 수록했다. 연인과의 이별,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그리고 산책이라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주인공이 자기 내면의 공허함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린다.
미투 사건 방관자의 내면의 독백을 기록한 한지수의 '목소리들'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2021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인 작가는 삶의 불완전함과 아이러니에 처한 인물들의 내면을 탐구한다.
232쪽.
hy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