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노인일자리] ③ 커피 찌꺼기서 탄생한 일자리…"안전·다양해야"(끝)
연합뉴스
입력 2025-06-25 09:10:01 수정 2025-06-25 12:08:31
신노년 능력 고려한 일자리 발굴 필요…초기 투자비 등은 숙제


커피박(찌꺼기)을 활용한 탈취제(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전주효자시니어클럽 작업장에서 노인들이 커피박(커피찌꺼기)을 활용한 탈취제를 만든 뒤 정리하고 있다. 2025.6.16

[※ 편집자 주 =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2023년 기준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3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65세 이상 연금 소득자의 월평균 연금 소득은 80만원 수준으로 1인 가구 월 최저 생계비 134만원(2024년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월 30만원 안팎에도 공공 일터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노인의 경제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은 핵심 복지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적지 않은 참여 노인들이 매년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숨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의 안전사고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3편에 걸쳐 싣습니다.]

건조 중인 커피찌꺼기(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전주효자시니어클럽 작업장에서 한 참여자가 커피박(커피찌꺼기)을 건조기에 정리하고 있다. 2025.6.16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사부작사부작 만들면 지루하지도 않고 재밌죠. 즐겁게 일을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전주효자시니어클럽 작업장에서 만난 양영신(72)씨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이곳에서는 평일 오전마다 노인 20여명이 커피박(커피찌꺼기)을 탈취제로 만드는 '커피박 새활용' 작업을 한다.

공공형 일자리 사업 중 하나인데, 효자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인근 카페에서 가져온 커피박을 말린 뒤 꽃 모양 틀에 넣어 제품이 되면 이를 포장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탈취제로 탄생한 커피박은 또 다른 공공형 일자리 참여 노인들에 의해 동별 주민센터로 옮겨진다.

양 씨는 "쉬는 시간에 다 같이 국민 체조를 하면서 몸도 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놀기도 한다"며 "일하는 게 재밌다"고 웃었다.

시니어클럽[장수시니어클럽 홈페이지 화면 캡처]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월 소득이 적을수록 참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나이 많은 노인들의 참여율이 특히 높다.

그렇기 때문에 잡초 제거나 쓰레기 줍기 같은 단순 실외 노동보다는 노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주효자시니어클럽에서 운영 중인 커피박 재활용 작업은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일자리 중 하나다.

이외에도 전주효자시니어클럽에는 폐건전지를 회수해 리사이클링 기업에 전달해주는 '시니어 폐건전지 수거단'과 지역아동센터에서 급식 준비 등을 돕는 '아동센터 돌봄봉사', 작은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는 '도서관 책 정리 봉사' 등의 일자리도 마련돼 있다.

박효순 전주효자시니어클럽 관장은 "노인 일자리에 나이 제한(65세 이상)은 있어도 상한선은 없기 때문에 고령층이나 인지장애를 가진 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실내에서 안전하게, 소일거리로 할 수 있는 커피박 새활용 작업은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수행기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예산 한계에 따른 인력과 공간 부족 등의 문제는 수행기관의 일자리 발굴 의지를 꺾는다.

박 관장은 "실내 작업을 위해 공간을 임대하거나 기기 등을 구매하려면 초기 투자비가 필요한데 예산이 빠듯한 상황"이라며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도 실외에서 하는 기존 사업 외에 추가로 일을 벌일 수 없는 게 수행기관 대부분의 현실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신노년세대'가 몰려오는 만큼 일자리의 안전성은 물론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에 이어 단일 세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964만명이 본격적으로 은퇴를 시작하는 만큼 이들의 욕구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양열 전북사회서비스원 원장은 "학력 수준이 높고 노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전과는 다른 '신노년'들이 은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품어내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 일자리 사업이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춘식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 일자리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늙고 방해만 되는 존재'라고 여기는 노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전문 경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은 일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이들의 능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들도 다양한 일자리를 바라고 있다.

전주시 완산구에 거주하는 김영순(78)씨는 "한 달 29만원은 노인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기는 하지만 돈보다는 일자리가 주는 행복감이 크다"며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또 직접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는 동안 더 재밌고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 올해는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일을 했는데 내년에는 책 정리를 해보고 싶고, 여건이 되면 컴퓨터도 배워서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며 "노인들이 더 재밌게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가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war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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