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6관왕 간담회…"식탁에 트로피 두고 식사, 신기"
"이방인로서의 정체성 강점…한국 문화 공부하는 배우들, 이게 K-뮤지컬"
"손석구·전미도 영감주는 배우들"…"무게만큼 열심히 창작할 것"
"이방인로서의 정체성 강점…한국 문화 공부하는 배우들, 이게 K-뮤지컬"
"손석구·전미도 영감주는 배우들"…"무게만큼 열심히 창작할 것"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토니상) 트로피를 식탁에 올려두고 아침을 먹었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상징적인 트로피가 제 초라한 뉴욕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요. 그 무게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창작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가 24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미국 토니상 6관왕 기념 간담회에서 수상을 실감한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다.
지난해 11월부터 해외 제작진과 출연진으로 구성돼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달 초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K-뮤지컬 최초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석권했다.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창작해 2016년 국내에서 초연한 지 약 9년 만에 이룬 성과다. 박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애런슨 작곡가와 함께 극본상과 작사·작곡상을 받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근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만나 사랑하게 되며 겪는 일을 그린 창작 뮤지컬이다.
박 작가는 오랫동안 교제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가장 친한 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 힘든 시기에 '어쩌면 해피엔딩'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데이먼 알반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의 가사 중 외로워지는 인간을 로봇에 비유한 내용을 듣고서다.
"'차라리 좋아하지 않았다면 상처받을 리 없을 텐데, 왜 자꾸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은 걸까'라고 생각했어요. (중략) 노래를 듣고 주변 사람을 보니 모두 노트북과 휴대전화만 보고 있는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테이블 건너편 상대방보다는 스크린을 더 보는 사람이 됐구나, 내가 요즘 겪는 이별과 상실을 로봇이 겪게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고 윌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박천휴 작가는 브로드웨이 공연의 성공 비결에 관해 실패할 것이라는 예측의 근거가 되레 관객에게 참신하게 다가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로봇이 등장한다는 핵심 설정이 대표적이다. 박 작가는 이런 점이 개막 전에 '어쩌면 해피엔딩'이 성공하지 못할 주요 근거가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안 될 이유,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많았어요. 유명한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 ('어쩌면 해피엔딩' 주연) 대런 크리스가 많이 알려진 배우이긴 하지만, 공연계에서 티켓 파워가 있다기보다는 젊은 배우에 속했고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참신하게 다가간 것 아닌가…."
그는 "'미래의 한국에 로봇이 주인공이라고? 그런 거 누가 봐'라고 했는데, 공연이 잘 된 상태에서 생각해보면 되레 그것을 환호해주시는 분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돌아봤다.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도 공연을 본 뒤 박 작가와 화상 통화를 하며 한국 배경과 캐릭터를 작품의 매력으로 꼽았다고 한다.
박 작가는 "(스필버그 감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며 "다음 작품인 '일 테노레' 줄거리를 들려드렸더니 '너무 재미있다. 제작하게 되면 알려달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박 작가는 'K-뮤지컬'이라는 규정에 관해서는 "대런 크리스 등 배우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의 문화를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공부했다"며 "'한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면 K-뮤지컬이라고 해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의 토니상 시상식 소감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당시 "(작품과 달리) 저는 아직 싱글입니다"라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저도 싱글이에요'라는 팻말을 들고 박 작가를 기다리는 팬들이 등장했다.
박 작가는 관록 있는 제작자들의 조언을 듣고 미리 수상소감을 준비했다고 뒷얘기를 들려줬다.
"짧고 위트 있게 해야 한다고 해서 대본 쓰듯이 앉아서 소감을 쓰는데, 정말 짜증이 났어요. 다들 저희가 커플인 줄 알았거든요. 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고 저만 싱글인데, 제 혼사가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나와 '우리 커플 아니다, 싱글이다'라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파장이 커질 줄은 몰랐죠."
박 작가는 뉴욕과 서울로 오가는 생활 속에서 본인이 느끼는 이방인이란 정체성을 장점으로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로 유학을 갔다.
박 작가는 "예전에는 한국에 오면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고 이상해'라고 하고 뉴욕에 가면 이민자였다"며 "시간이 쌓이고 보니 그게 나라는 사람의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저를 아껴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영감을 받는 배우로 손석구와 전미도를 꼽으며 매 순간 순간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전미도는 '어쩌면 해피엔딩'에 출연한 배우다.
그는 "손석구 배우를 공연 뒤 만난 적이 있는데,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 쓰신 적도 있었다. 배우로서 훌륭한 분인데 저렇게 글짓기에 욕심이 있는 것을 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영감을 받았다"며 "경력과 상관없이 신인배우에게서, 또 베테랑 전미도 배우에게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는 외로움에 천착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감정에 파묻히지 않고 정서가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들 셋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혼자 예민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컸다.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고스트 베이커리', '일 테노레'까지 쓰다 보니 저는 외로움에 천착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았다)"라며 "작가로서 그것에 공감하고 위로가 되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글을 쓸 때면) 제 감정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헤집고 쓰게 돼요. 제 꿈은 이 일을 좀 더 즐기게 되는 건데요. 테크닉을 발전시켜서 슬픈 얘기를 쓰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오는 10월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을 한다. 초연을 맡았던 한경숙 프로듀서가 이번 공연에 참여한다. 그는 대본과 음악은 그대로 이어가면서 이전보다 커진 공연장 규모에 맞춰 무대를 보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경숙 프로듀서는 브로드웨이 버전의 국내 공연 계획에 관해선 "2028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encounter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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