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인공지능(AI)은 공상과학 영화 속 상상력을 현실로 바꿔 왔다. 그리고 이제, 도로 위의 자율주행차가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차량.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다. 자율주행차는 단지 센서를 얹은 차량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진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가장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사례 중 하나다.
자율주행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딥러닝'이 처음 세상에 뿌리를 내린 건 1980년대였다. 바로 인공지능의 선구자 제프리 힌턴 교수의 연구에서 시작된 여정이다. 힌턴 교수는 인간의 두뇌처럼 작동하는 인공신경망이야말로 진정한 AI의 핵심이라 믿었다. 그는 1986년, '역전파 알고리즘(backpropagation)'을 기반으로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이는 곧 '다층 퍼셉트론(Multilayer Perceptron·MLP)'의 기반이 됐다.
당시에는 연산 능력이 부족해 그의 연구는 학계의 뒷전으로 밀렸지만, 이후 컴퓨팅 성능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딥러닝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이미지를 분류하고 언어를 이해하며, 이제는 운전까지 배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힌턴의 연구는 자율주행차라는 형태로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 인공지능이 자율주행의 눈과 귀가 되기까지
자율주행차는 도로를 달리며 스스로 멈추고, 가속하고, 회전한다. 복잡한 교차로에서도, 보행자와 자전거가 엇갈리는 좁은 골목에서도 자동차는 판단을 내리고 행동한다. 이처럼 차량이 도로 상황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는 '규칙기반 모듈러 방식', 다른 하나는 '딥러닝 기반 엔드 투 엔드 방식'이다.
모듈러 방식은 인간이 설계한 수많은 규칙을 차량에 주입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신호가 빨간색이면 정지하라', '차간 거리가 가까워지면 속도를 줄이라'는 식이다. 이 방식은 해석과 설명이 용이하고, 안전성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널리 사용된다. 실제로 구글 웨이모는 자율주행 초기, 수천 개의 규칙을 기반으로 한 모듈형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한 장애물,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사람의 돌발 행동 같은 변수들 앞에서 규칙 기반 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낸다. 이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것이 바로 딥러닝 기반의 '엔드 투 엔드(E2E)' 방식이다.
E2E는 인간이 규칙을 정의하는 대신, 인공지능이 실제 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수천 시간의 운전 기록을 AI에 입력하면, 인공지능은 도로 상황과 운전자의 조작 패턴을 파악해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조작한다'는 식으로 학습한다. 사람이 도로를 보며 본능적으로 반응하듯, AI도 패턴을 통해 조향과 가감속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 퍼셉트론의 진화가 바꾼 도로 위의 질서
인공지능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퍼셉트론은 처음에는 단순한 문제만 해결할 수 있었다. 예컨대 'XOR' 문제처럼 참과 거짓을 복잡하게 나누는 논리는 단층 퍼셉트론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층 퍼셉트론 구조와 역전파 알고리즘이 결합하면서, 인공지능은 이제 복잡한 상황을 해석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자율주행차에 그대로 적용됐다. 차량은 센서를 통해 얻은 도로 영상과 환경 데이터를 입력받고, 신경망을 통해 핸들 조작, 제동, 가속 등의 출력을 결정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보행자를 만나면 정지하라'고 가르쳤지만, 이제는 AI가 수많은 보행자 데이터를 통해 '언제 멈춰야 할지'를 스스로 깨닫는다.
특히 E2E 방식은 다양한 센서 데이터(카메라, 라이다, GPS, 고정밀 지도, 심지어 음성 명령까지)를 통합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처럼 멀티모달(다중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자율주행차가 등장하고 있다.
모듈러 방식과 E2E 방식은 각각 장단점을 지닌다. 모듈러는 안전성과 설명 가능성에서 우위에 있다. 반면, E2E는 현실의 다양한 변수를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학습 능력이 있다. 최근에는 이 두 방식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형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입력된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규칙을 생성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탑승자와 대화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전격 Z작전'의 '키트'처럼,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도로를 누비는 차량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율주행차는 거리를 달리고 있다. 택시로, 배달차로, 통근차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인공지능 연구의 발걸음이 녹아 있다. 자율주행차는 단지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자, 우리 미래의 길을 비추는 헤드라이트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ITS 아시아 태평양총회 조직위 위원.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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