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노인일자리] ② '근로자' 인정 못 받아…업무 수행체계 미흡
연합뉴스
입력 2025-06-24 09:10:01 수정 2025-06-25 12:10:12
근로 아닌 '봉사'로 분류…다쳐도 산재 안되고 책임 떠맡아


잡초 뽑던 노인 일자리 참여자, 5m 아래로 추락해 숨져(장수=연합뉴스) 2025년 5월 9일 오전 10시 24분께 전북 장수군 천천면 한 다리 인근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잡초를 뽑던 70대가 5m 아래 도랑으로 떨어져 숨졌다. 당시 사고 현장. [전북자치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2023년 기준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3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65세 이상 연금 소득자의 월평균 연금 소득은 80만원 수준으로 1인 가구 월 최저 생계비 134만원(2024년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월 30만원 안팎에도 공공 일터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노인의 경제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은 핵심 복지정책 중 하나로 자리 잡았지만, 적지 않은 참여 노인들이 매년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숨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 사업의 안전사고 현황과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3편에 걸쳐 싣습니다.]

고령인구 증가 (PG)[백수진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전북 장수군 천천면에 거주하는 이모(73)씨는 지난 4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선고받았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사업에 참여하며 작업반장을 맡았는데 지난해 5월 이 사업에서 잡초를 뽑던 70대 동료가 5m 아래 도랑으로 떨어져 숨진 것과 관련해서다.

수사 당국은 작업반장을 맡았던 이씨가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벌금을 낼 테니 이 일을 빨리 잊어버리자고 해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면서도 "날벼락이긴 했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기관(시니어클럽이나 복지관 등)이 운영한다.

작업반장은 이 수행기관의 현장 업무를 지원·보조하는 역할을 하는데, 10명 안팎의 마을 노인들이 의논해 뽑는 게 일반적이다.

편의상 작업반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연락책에 가깝다.

참여자들끼리 작업할 곳을 정하면 작업 범위를 수행기관에 알리고 출석을 확인하는 게 주요 역할이다.

이씨 역시 노인들이 출근했는지 자필서명을 받는 게 주 업무였다고 한다.

그는 "작업반장은 일반 참여 노인(월 29만원)보다 한 달에 3만원 더 받아서 총 32만원 정도를 받는데, 돈 더 받는데 일은 안 하고 지시만 하면 어떤 노인들이 좋아하겠냐"면서 "노인들하고 똑같이 일을 한다. 전국의 모든 작업반장이 이처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의 사고가 억울한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휴식 시간에 잠깐 물을 마시러 집에 간 사이에 사고가 났다"며 "이 사고 후에 다들 작업반장을 꺼린다. 어르신들이 나서서 다 같이 설득한 끝에 지금은 60대가 작업반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로고[촬영 정종호]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이 사망사고의 책임이 이씨에게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사회서비스형, 민간형 일자리와 달리 봉사 업무로 분류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노인과 수행기관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지 않다 보니 산업재해 처리도 불가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해도 수행기관에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경찰도 당시 수행기관이었던 장수시니어클럽의 공공형 노인 일자리 담당자를 수사했지만, 이런 이유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장수경찰서 관계자는 "시니어클럽 담당자는 사고 당일에도 이 현장에 있던 노인들에게 '경사지나 하천 옆, 위험도로 등에서 절대로 일을 하지 말라'고 교육했었다"며 "이것만으로 그 의무를 다했다고 봤고, 시니어클럽과 노인들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작업반장은 참여자들을 인솔하고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당시 작업반장 이씨의 지시에 따라 그날의 업무를 정한 만큼 이씨가 위반 사항이 있다고 봤다"면서도 "다만 공공형 노인 일자리의 안전사고가 잦은 만큼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수행기관과 근로계약 관계를 맺는 등 책임자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이 설명한 것처럼 수행기관은 활동 방법과 안전 수칙 등에 필요한 교육만 하면 된다.

그렇다 보니 수행기관은 일자리 사업 현장을 방문해 교육하는 정도에 그친다.

수행기관이 모니터링 등을 실시하려고 해도 인력이 부족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회서비스형(100명당 1명)과 민간형(120명당 1명)과 달리 공공형은 담당자 1명이 노인 150명의 행정 업무를 맡기 때문이다.

장수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라고 아무리 교육해도 노인들이 금방 잊어버리기도 한다"며 "일하는 내내 자리를 지키면서 노인들의 작업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겠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림도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일은 많은데 월급은 적다 보니 열악한 처우를 버티지 못해 (시니어클럽) 직원들의 퇴사도 잦다"며 "일의 연속성이 없어 안전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도 없는 만큼 더 많은 정부 지원이 이뤄져 직원들이 충원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노인 일자리의 가치를 생각할 때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사고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승희 전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의 취지가 양질의 일자리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고 노인들의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자는 데 있는 만큼 손익 계산을 따져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이 좀 더 들더라도 사고를 줄이는 고민을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노인복지의 방향이고, 노인 일자리를 가치 있게 운영해 나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war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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