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열린 비공개 전문가 심포지엄 살펴보니…"조선 왕실 사당 건축물 추정"
"궁궐 내 건물 가능성 낮아"…서울 종로 송현동·통의동 등 위치 거론
원래 명칭·위치 등 연구 필요…제 모습 찾기까지 시간 걸릴 듯
"궁궐 내 건물 가능성 낮아"…서울 종로 송현동·통의동 등 위치 거론
원래 명칭·위치 등 연구 필요…제 모습 찾기까지 시간 걸릴 듯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일본에 있었던 관월당(觀月堂)이 100여년 만에 돌아오면서 그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해소될지 관심이 쏠린다.
24일 국가유산청이 공개한 '2025 한일 문화유산 협력 심포지엄' 자료집에 따르면 관월당의 건축적 특징과 역사를 조사한 전문가들은 이 건물이 조선시대 왕실 사당과 관련한 건축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지난 3월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주최한 학술 행사는 관월당 해체 과정과 그간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논의하고자 비공개로 진행됐다.
관월당이 있는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 주지인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일본 게이오대 교수를 비롯해 전봉희·이경아 서울대 교수 등 한일 양국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건축문화유산 분과 위원장인 전봉희 교수는 "관월당은 건축 형식, 평면 구성, 규모 등에서 왕실의 사당 건축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발표문 자료에 따르면 관월당에는 용이나 박쥐, 거미 무늬의 암막새 기와가 쓰였다. 이 가운데 용무늬 기와는 궁궐의 주요 건물에서 주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교수는 "부재 사용이나 의장 격식은 칠궁의 사당과 유사하나, 규모 면에서는 조금 작다. 규모로 보자면 대군의 사당인 청권사나 지덕사의 중간 정도"라고 설명했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며, 지덕사는 태종(재위 1400∼1418)의 장남인 양녕대군(1394∼1462)을 모신 곳이다.
손현숙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은 관월당에 남아있는 단청 채색과 그 흔적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높은 위계를 갖춘 건물"이라고 판단했다.
손 전문위원은 "관월당은 내·외부의 모든 목(木) 부재에 빠짐없이 채색을 입힌 '단청한 건물'"이라며 "하나의 건물에 두 시기의 단청이 중첩된 채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먼저 채색된 단청과 관련해 "18세기 후기 또는 19세기 초의 궁궐 양식과 사당 양식을 보여주는 희귀 사례로서 단청사 연구를 위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봤다.

관월당이 과거 어디에 있었는지는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10년 종교계를 중심으로 관월당에 관해 논의했을 당시에는 이 건물이 경복궁 내에 있었던 전각일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으나,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근대건축 및 도시 변화를 연구해 온 이경아 교수는 발표문에서 "건물 규모와 위상 등을 고려할 때 관월당이 궁궐 내 건축이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관월당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광장이 된 순정효황후 본가 터(조선식산은행 사택 터), 통의동 일대의 창의궁 터(동양척식은행 사택 터), 과거 월궁이라 불렸던 월성위궁 터 등 3곳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관월당을 옮긴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1870∼1939)와 관련해서는 "1924년 조선식산은행 초청으로 방문했다가 일본으로 옮겨간 것이 유력하다"고 추론했다.
그러면서 "관월당은 대략 1934∼1936년 사이에 도쿄(東京)에서 가마쿠라(鎌倉)의 고토쿠인으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관월당 부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건물을 해체할 당시 마루판 아래에서는 1960년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신문 조각이 일부 나오긴 했으나, 상량문(上樑文)은 발견되지 않았다.

상량문은 목조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리고 제의를 지내면서 쓴 글로, 건축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건립과 관련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건물의 원래 명칭, 조선에서 있었던 위치, 배향 인물 등에 관한 내용은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에 건물을 복원, 혹은 재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재 해체된 부재는 경기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관월당이 도쿄와 가마쿠라로 각각 옮겨지는 과정에서 건물 양식이나 구조 일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앞으로 충분한 논의와 연구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규철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3월 심포지엄에서 관월당을 "한국과 일본의 공유유산(shared heritage)"이라고 지칭하며 양국의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이 연구위원은 "2024년(해체 당시)의 관월당을 보존할지, 창건 당시 모습을 추정해 복원할지, 부재를 그대로 사용할지 등 쉽지 않은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며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가유산청은 향후 관월당과 관련한 학술 연구를 이어갈 방침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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