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초기엔 문맹 고려해 투표용지에 막대 기호 사용
투표용지에 아라비아 숫자 기호 등 편의성 강화 추세
대선 투표용지 28㎝ 넘기도…길어지는 추세
투표용지에 아라비아 숫자 기호 등 편의성 강화 추세
대선 투표용지 28㎝ 넘기도…길어지는 추세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관심은 투표용지에도 쏠리고 있다.
투표용지는 유권자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며 투표용지의 형태와 특징이 선거의 접근성과 보안성 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용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걸까. 변화가 있었다면 왜 이렇게 바뀐 걸까.
건국 이후부터 최근까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사용된 투표용지의 변천 과정과 더불어 대선의 시대적 배경과 출마 후보자 수에 따른 투표용지 변화를 검증해봤다.

◇ 대선 투표용지, 막대→아라비아 숫자 기호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는 건국 이후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함께 다양한 변천 과정을 거쳐 왔다.
초기 간접선거 시기의 단순한 투표용지 형태에서 시작해 직접선거 도입과 함께 유권자 편의성을 고려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간접선거를 하고 후보자 수도 제한했지만 민주화 이후 직접선거가 정착되면서 투표용지는 가로쓰기, 한글 표기, 아라비아 숫자 기호 도입 등 현대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권자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자동 개표 시스템 도입, 무효표 방지, 보안 강화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형태로 진화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선거역사관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기 대통령 선거의 경우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할 때 제1대(1948년) 대선은 소수의 국회의원만이 참여하는 간접선거였다. 이에 따라 당시 투표용지는 일반 유권자를 위한 복잡한 디자인이나 특징보다는 선거인인 국회의원들이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간결한 형태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제2대(1952년)와 제3대(1956년) 대선은 직접 선거 방식이었다. 세로쓰기와 함께 후보자 식별을 위해 막대 기호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막대 기호가 사용된 것은 여전히 존재했던 문맹 유권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제4대(1960년) 대선은 그해 3월 이승만 후보가 상대 후보 사망으로 무투표 당선됐으나 4·19 혁명 이후 당선이 무효가 됐고 8월에 대선이 다시 치러졌다. 그해 3월 대선에는 투표용지에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 기호가 사용됐고 세로쓰기와 한자·한글 혼용 표기가 이뤄졌다. 그해 8월 선거는 간접선거로 회귀해 투표용지가 제1대 선거와 유사한 형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후보가 당선된 제5~7대(1963~1971년) 대선은 직접 선거로 복귀했으며 제5대(1963년) 대선부터 정당 추천제가 의무화되면서 투표용지에 정당명이 표기되기 시작했다. 제7대(1971년) 대선부터는 막대 기호 대신 아라비아 숫자가 사용됐지만 세로쓰기와 한자·한글 혼용은 유지됐다.
투표용지에 정당명이 포함된 것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소속 정당을 통해 정치적 성향과 정책을 파악하고 투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됐다.
제8~10대(1972~1979년) 대선도 권위주의 시대라서 간접 선거로 치러졌다.
이 시기의 대선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였으므로, 건국 초기의 간접 선거와 유사하게 대의원들이 후보 이름을 직접 기재하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8대(1972년) 대선 투표용지는 엽서 크기에 뻣뻣한 종이였다는 기록이 있다.

제11대(1980년) 대선은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로 당시 군부 실력자였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단독 출마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거로 당선됐다. 투표용지는 이전의 간접 선거와 유사하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단일 후보를 지지하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12대(1981년) 대선은 전두환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제5공화국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되면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가 다시 치러졌고, 전두환 대통령이 다시 선출됐다. 투표용지는 이전의 직접 기재 방식에서 벗어나 후보자 이름이 인쇄된 투표용지에 도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13대(1987년) 대선은 직접 선거로 복귀하면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투표용지는 세로쓰기와 한자·한글 혼용 표기가 유지됐고 아라비아 숫자가 기호로 사용됐다.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 제14대(1992년) 대선은 투표용지가 가로쓰기와 세로 정렬 방식으로 크게 변했고 왼쪽부터 아라비아 숫자 기호, 한글 정당명, 후보자 이름, 기표란 순으로 배치됐다.
가로쓰기와 세로 정렬 방식은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쉽고 편리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다. 한글 정당 이름만 표기된 것은 한글 사용의 보편화와 함께 유권자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변화로 볼 수 있다.

제16대(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는데 가로쓰기 및 세로 정렬 방식이 유지되면서 현대 선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제17대(2007년) 대선은 후보 수가 많아 투표용지가 길어져 인쇄 및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했다.
제18대(2012년) 대선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는데 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전자 칩이 내장된 강화 플라스틱 투표함이 도입됐다. 투표용지 자체보다는 투표함의 보안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제19대(2017년) 대선은 투표용지가 무효표 방지를 위해 후보자 간 간격을 0.5cm로 설정했고, 사퇴한 후보의 기표란에는 '사퇴'라고 표기해놨다. 제20대(2022년)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선출됐는데 투표용지는 자동 개표에 적합한 특수 코팅 용지가 사용됐고 후보자 간 간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 대선 투표용지 28㎝ 넘기도…길어지는 추세
대통령 선거의 투표용지 형태 못지않게 궁금한 게 길이다.
후보자가 무더기로 나올 경우 투표용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초기(1948~1960년대) 대선에서는 후보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디자인이 간단했기 때문에 투표용지 자체의 크기나 길이가 지금보다 훨씬 짧은 편이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사용된 용지는 대략 10~15cm 내외의 길이로 추정된다.
1963년 이후 대선 후보자 수가 늘어나고 정당명 및 기호 등의 표기가 추가되면서 용지에 여백과 구분선 등이 들어가게 됐다. 이와 함께 투표용지의 전체 길이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에는 대략 15~20cm 정도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 등록 기준과 기재 항목이 늘어나면서 각 후보자의 이름, 소속 정당, 기호 등을 명확하게 표기하기 위해 용지 크기가 확장됐다. 2007년이나 2012년 대선에서는 대략 20~25cm 길이의 투표용지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위키백과 등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볼 때 가장 길었던 대선 투표용지는 제19대(2017년) 대선으로 15명의 후보가 나와 용지 길이만 28.5cm에 달했다. 제20대(2022년) 대선이 후보 14명으로 27cm로 뒤를 이었다.
제19대 대선에서는 투표용지 길이가 길어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접는 데 불편을 겪거나, 투표함에 넣을 때 접는 방법을 안내하는 일도 있었다.
투표용지 길이가 길어질수록 투표지 분류기(개표기) 사용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 대선에서는 아직 개표기 한계를 넘은 적은 없다. 하지만 2020년 21대와 지난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각각 48.1cm와 51.7cm를 기록하면서 전자개표기가 아닌 수작업 개표가 필요했던 사례가 있었다.

후보자 수가 많아질수록 투표용지에 기호, 정당명, 후보자 이름, 기표란을 모두 넣어야 하므로, 기표란 간격이나 여백을 줄여도 한계가 있어 투표용지가 계속 길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제20대 대선 기간 중 소셜미디어(SNS)와 언론에서는 "한 줄로 이어지면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거리보다 길다"는 농담까지 나오면서 투표용지 길이에 대해 개선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다.
◇ 일본은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 직접 써넣어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투표용지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투표용지 디자인은 선거의 공정성, 유권자 편의, 부정 방지 등 다양한 목적을 반영하기 때문에 문맹률이 높은 국가는 그림·사진 등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고, 문맹률이 낮은 국가는 글자 위주, 직접 써넣는 방식이 많다.
인도의 투표용지는 정당의 상징 마크(연꽃, 손바닥 등)와 후보자 이름, 그림과 글자가 함께 있다. 이는 문맹률이 높기 때문에 그림 중심이며 정당 수가 많아 다양한 상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수단, 케냐 등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투표용지에 찬반 그림(손, 바나나, 오렌지 등)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문맹률이 높아 그림으로 의사 표현하고 투표란에 지문을 찍는 방식 등이 쓰이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아일랜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 식별을 돕기 위해 후보자 얼굴 사진과 정당 마크가 있으며 컬러 인쇄 형식이다.
일본은 인쇄된 후보자 목록이 없고 빈 투표용지에 유권자가 직접 후보자 이름을 쓰는 독특한 방식을 쓰고 있다. 기명식 투표로 필체로 부정을 방지한다. 이름을 틀리게 써도 유효표로 인정하기도 한다.
호주의 투표용지는 후보자 옆에 유권자가 선호 순서대로 1, 2, 3 등 숫자를 써넣는다.
미국의 투표용지는 옵티컬 스캔, 펀치카드, 나비형 등 주마다 다양하며 후보자 이름 옆에 표시하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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