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베트남, 무역협상 위해 2∼4년 걸리는 절차를 3개월로 단축"
"당국 압박에 삶의 터전 빼앗긴 현지 주민들 분노"
"당국 압박에 삶의 터전 빼앗긴 현지 주민들 분노"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족기업이 베트남에 투자비 2조원대의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지으면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법적 절차를 건너뛰어 초고속으로 인허가를 받는 전례 없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진단했다.
베트남 당국이 미국과 무역 협상 성공을 위해 공사 관련 절차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현지 주민들이 당국의 압박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등 피해마저 보고 있다는 것이다.
26일 NYT에 따르면 베트남 북부 하노이 인근 흥옌성에서 지난 21일 트럼프 대통령 가족기업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수석부사장인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와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리조트 단지 '트럼프 인터내셔널 흥옌' 착공식이 열렸다.
약 15억 달러(약 2조500억원)가 투입되는 이 단지는 약 10㎢의 부지에 18홀 골프장 3개와 5성급 호텔, 고급 주거단지와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초대형 시설이다.
사업 주체인 트럼프 오거니제이션과 베트남 부동산 개발사 낀박시티(KBC) 컨소시엄은 초기 사업 계획을 지난 2월께 당국에 제출했으며, 이후 통상 2∼4년이 걸리는 인허가 과정을 불과 석 달 만에 마치고 착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46% 초고율 상호관세 표적이 된 베트남 정부는 부지 확보·자금 조달·환경 영향 검토 등과 관련해 베트남 법에서 요구하는 최소 약 6단계의 절차를 마치지 않고 착공하도록 허용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건설 인허가를 위한 첫 절차인 각 지역 단위의 독립적인 심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공개 의견 수렴 절차, 도시계획 관련 법규도 건너뛰는 전례 없는 초법적 특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NYT가 입수한 흥옌성 인민위원회 위원장 쩐 꾸옥 반 명의의 3월 20일 자 공문은 이 사업이 "트럼프 행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면서 베트남 정부 고위층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공문은 또 에릭 트럼프의 베트남 방문 일정에 맞춰 인허가 절차를 단축해달라고 촉구했으며, 베트남 중앙정부는 이에 맞춰 인허가 절차를 지난 15일 마무리했다.
이처럼 베트남 정부는 트럼프 리조트를 위해 자국법을 무시하고 베트남에서 가장 인맥이 센 현지 실력자들조차 누리기 어려운 양보를 했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런 과정에서 리조트 부지에 살고 있는 현지 주민들도 삶의 터전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주민 레 반 쯔엉(54)은 지역 관리들로부터 리조트 건설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5대에 걸친 조상들의 묘지와 비옥한 농지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압박에 못 이겨 동의서에 서명한 쯔엉은 "그들은 호텔, 골프장, 수영장을 갖게 될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 마을 회의를 연 부지 주민 수백 명은 당국자로부터 토지 보상비를 리조트 계획 발표 이전의 절반 정도밖에 못 준다는 통보를 받고 분노해 자리에서 뛰쳐나오기도 했다.
착공식 당일 행사장 주변에 모인 현지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행사장과 거리를 두고 멀리서 행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착공식을 지켜보던 주민 도 티 수엇(63)은 "그들은 왜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이냐"라면서 "그들은 우리 땅을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살면서 뭘 해야 하나"라고 한탄했다.
찐 총리도 이런 주민의 반발을 의식한 듯 착공식 연설에서 이번 공사로 땅을 잃게 된 주민들이 "이전보다 더 나은 새로운 생계 수단과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라고 지방 당국에 지시했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베트남 관리들은 리조트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베트남의 '호의'의 상징이 돼 양국을 더 긴밀하게 연결해주기를 바란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흥옌성 리조트와 경제 중심지 남부 호찌민시의 '트럼프 타워' 빌딩 건설 계획 같은 세계적인 돈벌이 사업으로 트럼프 가문은 더 부유해지고 있지만, 미국과 각국의 관계도 왜곡되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jh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