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날 맞아 입국한 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 회장
"양부모에게 받은 무한 사랑,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양부모에게 받은 무한 사랑,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어릴 적 아버지는 '크레이지' 했습니다.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렸고, 나와 동생은 방 한구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를 지금 만나게 된다면 그를 안고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스티브 모리슨(한국명 최석춘·66)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 겸 회장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가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친부를 용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날 입양해준 양부모로부터 받은 한결같은 사랑 덕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1일 입양의 날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모리슨 회장은 "아내와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냈고, 헌신적이며 겸손했던 분이 바로 양부"라며 "날 입양한 일이 인생에서 내린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말은 여전히 선연하다"고 고백했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생부는 걸핏하면 가정 폭력을 일삼았고, 견디다 못한 생모는 집을 떠났다. 생부가 경찰서에 구금됐던 날, 5살이던 모리슨 회장은 동생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왔다. 다리 밑에서 잠을 청하고, 배를 곯는 게 일상이었다.
노숙을 이어가던 중에 동생은 묵호항에서 이름 모를 여성의 손에 이끌려 떠났다.
그는 "그것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며 "나중에 실종아동찾기 방송에도 나갔지만 결국 다시 찾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 뿐"이라며 "언젠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지 않겠냐"고 했다.
이후 8년간 전국의 보육원 등을 돌면서 살다가 14살이던 1970년 일산의 한 보육시설에서 미국 입양이 결정됐다.
어머니를 많이 때리는 게 아버지라는 존재인 줄 알았던 그에게 존 모리슨 양부가 보여준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출근하기 전 어머니를 안고 키스하며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라'고 인사했고, 퇴근해서는 '잘 지냈냐'고 물어보셨어요. 친자식과의 차별 없이 저와 똑같이 사랑을 보내주셨죠."
세 명의 자녀가 있음에도 두 명의 아들을 입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양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내 꿈을 좋은 부모가 되는 것으로 정했다"며 "반백 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그 꿈을 이룬 거 같아 기쁘다"고 웃었다.
양부모의 사랑 아래 그도 올곧게 성장했다. 퍼듀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했고,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연구하는 방산업체인 미 항공우주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40여년간 근무하다 2021년 은퇴했다.
1982년부터 미국 홀트아동복지회의 이사를 맡고 있고, 한국입양홍보회를 결성해 미주 한인들에게 입양을 권했다. 이후 10년 동안 공개입양 신청이 50% 이상 늘기도 했다고 한다.
입양을 둘러싼 편견과 오해를 벗고, 입양인을 위해서라도 입양제도의 양지화는 중요하다고 했다.
그에게 입양, 특히 해외 입양 제도는 어떤 의미일까.
. 그는 "아름답고 당당하며,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며 "분명 개선할 점이 있고,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도 알지만, 아예 없애는 건 능사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대로 아동 중심의 입양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지만, 해외 입양을 무조건 차단하는 방침이 아동에게 최우선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원가정 복귀가 이상적이고, 그게 힘들다면 국내 입양, 그것마저도 어렵다면 최후의 대안은 결국 해외 입양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그는 "해외 입양마저 막힌다면 아이들이 갈 곳은 보육 시설밖에 남지 않는다"며 "아무리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보육시설이라 하더라도 가정을 대신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입양인과 그들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 부모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는 "또 다른 기회가 준 것이라 여기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입양아가 되길 바란다"며 "당신은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입양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끌고 간다면 분명 우리 가족처럼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격려했다.
입양된 지 몇 년이 흘러 그는 양부모에게 "왜 날 받아들여 줬어요?"고 물었다.
양부모는 "네가 와서 우리가 더 많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해줬다고 한다.
"그 말을 듣던 순간 어린 시절 내가 받았던 상처를 완전히 치유됐습니다. 입양 이후 50여년의 삶을 반추하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받아왔던 사랑을 이제는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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