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글로벌 브리튼' 전략 발표하며 일본과 군사협력 등 밀착
英日 항모전단 日 근해서 연합훈련·영국 CPTPP 참여까지 급물살
英日 항모전단 日 근해서 연합훈련·영국 CPTPP 참여까지 급물살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119년 전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영국과 일본이 다시 밀착하고 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결정 후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 전략을 발표하며 인도·태평양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영국과 중국 견제를 위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다.

최근 동중국해에서 진행된 양국 항모전단의 연합훈련과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영국이 동참하려는 움직임까지 이어지면서 '신(新) 영일동맹'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 '신 영일동맹'의 시대…인도·태평양 정세 지각변동
1902년 1월 영국과 일본이 체결한 영일동맹은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후 동북아 정세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청나라와 조선에서 상대국의 이익을 상호 인정하기로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 동맹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3년 8월 공식 폐기되기까지 양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능을 했다.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와 한일합병을 뒷받침했던 것도 영일동맹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과의 동맹관계 구축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트럼프가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뒤흔들며 주요 지정학적 이슈에서 미국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국제환경 변화 속에 일본은 때마침 브렉시트 결정과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의 영향력 확장을 천명한 영국과 밀착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국의 군사적 개입 방침을 명확히 했던 것은 테리사 메이 전 총리였다.
2017년 8월 새로 완공된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에 탑승해 '글로벌 브리튼' 비전을 발표한 메이 당시 총리는 2주 뒤 일본으로 날아갔다.
메이의 일본 방문은 아시아 각국 순방의 일환이 아니었다. 국제회의 참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위해서였다.
당시 영일 양국 정상은 도쿄에서 영국의 '글로벌 브리튼' 전략과 아베가 주창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조화시키고,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은 '영일 공동안보선언'을 발표했다.
메이 총리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영국과 일본은 모두 해양 국가이자 외부 지향적인 국가"라며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인권을 존중하는 양국은 자연스러운 파트너이자 동맹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23년 영일동맹이 폐기된 지 약 100년 만에 영국 정상이 일본을 '동맹국'이라 부른 것이다.
전임자인 메이의 외교정책을 계승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달 초 퀸 엘리자베스 항모전단을 본거지인 영국 포츠머스에서 2만㎞ 이상 떨어진 일본 요코스카(橫須賀)항으로 보냈다.
영국 항모전단은 요코스카항에서 나흘간 기항하며 오키나와 근해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퍼시픽 크라운 21'로 명명된 해상연합훈련을 했다. 여기에는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함대도 참가했다.
대만해협에서 중국의 위협적 군사 활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영국, 일본의 항모전단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시행한 첫 연합 군사훈련이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최근호에서 "영국의 새로운 전략인 '글로벌 브리튼'에 따라 대형 항공모함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신 영일동맹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일본은 오커스 합류하고 영국은 쿼드·CPTPP 참여할 것"
신 영일동맹으로 묘사되는 영국과 일본의 군사적 밀착은 향후 일본의 오커스(AUKUS) 합류와 영국의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협의체) 참여로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오커스와 쿼드는 모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팽창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다자 협의체다.
환태평양 국가도 아닌 영국이 올 상반기에 일본과 호주가 주도하는 CPTPP 참여를 신청한 것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일본은 태평양에서, 영국은 대서양에서 각각 미국과 동맹 관계"라며 "새로운 영일동맹의 탄생이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미일 3국 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과 일본 모두 미국과 강한 유대로 연결된 전략적 파트너이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이 오커스에 합류하고 영국이 쿼드에 참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이다.
영국과 일본의 급속한 군사적 밀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가는 당연히 중국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119년 전 맺어진 영일동맹이 당시 청나라에 대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용인하는 지지대 역할을 했던 쓰라린 기억이 생생하다.
영국의 '아시아 회귀' 선언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중국은 지난달 26일 영국 구축함 리치먼드호가 민감한 지역인 대만해협을 항해하자 강력히 반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대만해협을 통과한 영국 군함을 쫓아가 경고했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행동은 사악한 의도를 품고 대만해협의 안정과 평화를 해친다"고 비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 나카자와 가쓰지(中澤克二) 편집위원은 "중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과거 영일동맹이 그랬던 것처럼 영국의 브렉시트 후 아시아 정책이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CPTPP 참여 신청도 중국으로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중국은 오커스 출범 직후인 지난달 16일 신청서 접수 업무를 담당하는 뉴질랜드에 CPTPP 참여를 신청했는데, 오커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영국은 이에 앞서 올해 2월 가입 신청서를 냈고,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새로운 회원국이 CPTPP에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CPTPP를 주도하는 일본과 호주는 우호적 관계인 영국과 대만의 가입에는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의 참여에는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12일 "최근 주호주 중국대사관이 호주 의회를 상대로 중국의 CPTPP 참가를 받아들여달라며 로비를 벌였지만 댄 테한 호주 통상장관은 중국이 호주에 대해 무역 제재를 하는 한 이를 수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일본과 캐나다 역시 중국의 참여 신청에 부정적 입장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영국과 대만이 CPTPP에 합류하는 데에는 큰 걸림돌이 없지만 중국이 가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아키모토 치아키(秋元千明) 영국왕립방위안전보장연구소 일본특별대표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경제협정일 뿐만 아니라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며, 참여 11개국 중 6개국이 영연방 회원국"이라며 "영국의 참여는 TPP가 영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협의체로 발전할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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