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안보이는 봉쇄 시위…'40억 피해' 체육단체 "이재민 생활"

(서울=연합뉴스) 한지은 전재훈 조현영 기자 =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21일 17일째를 맞은 가운데, 시위대에 봉쇄된 핸드볼경기장 내 사무실을 쓰던 체육단체들은 사실상 내부 진입을 포기한 채 장외 업무에 돌입했다.
주최자나 구심점이 딱히 없는 이례적인 시위 탓에 협상에 난항을 겪는 경찰은 매일 기동대원 수백명을 투입해 질서 유지에 주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대원들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체육회 산하 9개 종목단체와 3개 사단법인 직원들은 핸드볼경기장 안에 있는 업무 공간과 경기용 장비 등에 접근을 포기한 채 대체재 마련에 나섰다.

◇ 사무실 새로 구하고 경기용품 재구매…"포기할 건 포기"
오는 22일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수중핀수영협회는 경기장 내 사무실에 둔 장비와 기념품 등 일체를 현재로선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경기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단복과 심사복, 자원봉사자와 운영위원 유니폼 등을 새로 주문했고,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해 급한 행정 업무에 착수했다.
대한수중핀수영협회 관계자는 "마냥 사무실 진입을 기다릴 수 없어 포기할 건 포기하고 급한 것부터 새로 구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당구연맹도 연맹이 주관·주최하는 대회에 쓸 용품을 외부에서 다시 마련했고, 국제대회에서 사용할 국가대표선수단의 피복도 재구매했다. 수상스키·웨이크보드협회는 대회 운영에 필요한 현수막과 메달, 사무용품을 새로 구입했다.
체육회는 급선무로 꼽히는 국가대표 선수와 지도자 수당, 직원 월급 지급을 위해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등 인증수단을 재발급받았다. 금융위원회가 체육회의 상황을 고려해 인증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협조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체육회는 지난 10일 월급 등을 위한 예산 60억원을 집행했어야 했지만, 경기장 내부 사무실에 인증수단이 있어 집행하지 못했다. 대회나 훈련을 위해 해외로 출국한 산하단체는 직원 사비로 체재비를 충당했다.
최근 OTP 재발급 절차를 마친 체육회는 곧 직원들의 월급 등이 제대로 지급될 예정임을 지난 18일 종목단체 회의에서 밝혔다고 한다.
◇ 사무실 봉쇄 피해 40억원 넘어…카드 연체료·업무지연 벌금도
지난 5일부터 2주 넘게 이어진 봉쇄 시위 탓에 업무가 마비되면서 단체들이 입은 금전적 피해는 4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대한펜싱협회 등 핸드볼경기장에 입주한 9개 회원종목 단체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15일까지 체육 단체들이 잠실 봉쇄 시위로 피해 본 금액은 약 41억4천100만원으로 집계됐다.
대한산악연맹은 사업 추진에 필요한 신용카드와 OTP를 이용하지 못해 카드 대금이 연체되면서 연체료를 물었고, 카드 한도가 축소되는 등 피해도 봤다.
수상스키·웨이크보드협회는 다음 달 한일 친선 경기에 참여하는 일본 선수 18명의 숙박비와 식비, 차량 대여비 등을 지불하지 못한 상황이다. 또 계약이 종료된 인력에 지급해야 할 퇴직금도 주지 못했다.
대한수중핀수영협회는 행정 업무 지연으로 세계수중연맹에 지연금 1만유로(약 1천750만원)를 냈다. 아울러 제24회 세계핀수영선수권대회에서 유료로 판매하려던 입장권 관련 업무가 중단되면서 무료 판매로 전환, 약 4천만원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 체육회 30여차례 진입 시도 무산…경찰 협상 진전 없어 난감
일각에선 체육회가 직접적인 업무방해 피해를 겪고 있는데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육회에 따르면 체육회와 산하단체 관계자들은 개표소 봉쇄가 이뤄진 지난 5일부터 최근까지 경찰과 함께 30회 이상 진입을 시도했지만 시위대의 완강한 반대를 뚫지 못했다.
체육회 관계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산하단체 직원들은 마치 산불로 집이 타버려 여기저기 떠도는 이재민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시위대에 구심점이 없고 여러 참가자들의 요구가 다양한, 전례 없는 시위 성격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경찰은 주최자의 사전 집회·시위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필요한 경력을 투입하고, 협의할 게 있으면 주최자와 소통한다.
하지만 개표소 시위는 신고된 인원이나 기간이 없어 경찰은 야간을 제외하고 상시 5∼7개의 기동대(약 300∼420명)를 투입해 '무한 대기'하고 있다.
1만명이 넘게 참가하는 시위에 5개 이하의 기동대가 투입되는 것을 고려하면 수백명 규모의 개표소 시위에 과도하게 많은 경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경력을 넉넉하게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 기동대원들은 "피로도와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처럼 새로운 형태의 시위가 점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우발적 시위도 집회로 인정하는 독일 등의 사례를 참고해 매뉴얼 연구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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