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재미교포 인권운동가이자 건축가 남신우 사장은 나의 오랜 친구다. 그는 오랫동안 북한 인권운동을 해왔고 그의 활약은 실제로도 국내외 많은 매체에서 깊이 있게 다뤄졌다. 17년 전 신우와 내가 당시의 우리 사회와 관련한 서간을 여러 차례 보내 주고 받은 내용 전문을 이전 칼럼에 이어 공개한다.


(전편에 이어 신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북한 놈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그러면 지금 그 끔찍한 전쟁을 다시 하자는 말일까?


경기고, 서울대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프리미엄 인생을 살고 있고, 그것으로 일가를 이뤘기 때문에 변화를 원치 않는다. 모든 '이스타블리쉬먼트'(establishment)는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지 변화와 개혁을 원치 않는다.


기득권이 도전받고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은 정체되어서는 안 되고, 발전을 위해서는 고뇌하고 변화를 모색하고, 개혁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내부의 개혁이 없는 조직과, 사회와 국가는 정체하고 부패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남겨주신 유품인데 유수불부(流水不腐), 호추불촉(戶樞不矗)이라는 대련 액자가 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대문의 문설주 돌쩌귀는 벌레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성찰과 내적 쇄신 없이는 개인도 발전이 없다. 청남 오제봉의 글씨로 된 이 두 액자를 우리 어머니는 형에게 하나, 나에게 하나, 그렇게 나누어 주셨다.


보수적이라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이룩해 놓은 업이 손상될까 봐 두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일수록 그 이룩한 것이 공짜인 경우가 많더라면 과장일까?


나는 아직도 내 주변에 거의 공짜로, 덤으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특히 경기고를 졸업하고 부모들 덕으로 미국의 명문대를 나온 선배 중에는 평생을 전화 한 통으로 이권에 개입하고 인간관계를 맺어주고 소개비를 받아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있음을 마음 아프게 바라본다.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노무현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여러 가지 정책에 동의하고 그를 지지했다.


선거만 했다고 하면 사과 상자에 몇백억씩 현금이 왔다 갔다 하던 풍조는 지금 완벽히 자취를 감췄다. 지방선거에서도 선거 때 곰탕 한 그릇 얻어먹자는 사람도 완벽히 없어졌다.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나는 지금 그것만 가지고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노무현이 큰 공헌을 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누구든지 김대중이, 노무현이 빨갱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틀린 주장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 해(2003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넓고 두껍게 뒤덮인 불신 사조의 심각성을 두고 깨달은 게 있었다. 아버지는 이회창, 아들은 노무현, 집마다 부자지간에 의견이 갈려서 같이 밥도 안 먹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밥상에만 앉으면 싸우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세대 간, 계층 간, 사상적 간극은 예상외로 넓게 벌어져 있다. 우리는 조금 더 '톨레랑스'(tolerance·관용)를 키워야 한다.


우리는 생각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만 갖는 공동체 성향이 너무 강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사제 간도, 갈라서야 한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친구일 수 있고, 애인일 수 있는 톨레랑스를 나는 다른 여러 나라, 여러 곳에서 봤다.


나는 신우, 네가 링컨에 몰두해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너는 옛날에도 무얼 하나 좋아하면 그냥 무조건 빠져들었지. 나는 늘 회의하고, 비판하고, 그래서 괴로워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너의 링컨 짝사랑과 몰두가 보기 좋았다. 그런 사람을 만나 끝없이 빠져들 수 있는 네가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네가 링컨에 대해서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그들의 견해도 인정했으면 한다. 아니라면 토론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을 '세상에서 가장 과대평가 된 건물'이라고 내 책에 썼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엉터리였다. 라이트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낱낱이 고발한 그 책을 쓴 사람은 오래전에 네가 나에게 선물한 책을 쓴 에이다 헉스터블이다.


내가 미국 건축가 중에 가장 좋아한 루이스 칸에게도 사생아를 낳아 평생 그를 감추어 둔 어두운 면이 있었다. 그런 일로 봐 나는 세상에 어느 쪽으로든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든지 사람들이 모르거나 달리 보는 면이 감춰져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또 너희가 모두 떠난 다음 혼자서나마 네덜란드에 가기를 정말로 잘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정말로 여러 가지를 배웠고 거기에 공감했다. 그 가운데 지금까지도 나에게 문제가 되는 점은 북유럽의 사회주의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들이다.


그 이래 나는 지금까지도 우리 역시 여러 부문, 특히 토지의 공개념화 같은 부분은 우리가 배우고, 도입해야 할 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처럼 국토의 이용과 토지의 배분에 관하여 미국식 자유주의 시장 경제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전체를 아파트 천국으로 만들어 국토를 황폐한 쓰레기장으로 만든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환경문제를 논하는 것조차 진보라고 구분된다. 그건 보수냐 진보냐 문제가 아니지, 생명의 근본문제지.


그런데 지금 내 주위의 형편은 내가 이런 생각의 일단을 피력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는 내가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반응들이고, 나아가 '좌경향'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즉 '좌파'라는 뜻이고, 우리나라에서 지금, 이 좌파라는 말은 '빨갱이'라는 말이며, 즉 '좌빨'이라고 불리는, 시대적, 민족적 죄인으로 인식되는, 우려할 만한 풍조 속에 있다.


빨갱이라는 말이 너무 흔히 쓰인다. '한겨레신문은 빨갱이 신문이다'는 둥, '남한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는 둥, 너무도 극단적인, 편파적인, 말들이 횡행한다. 이런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요즘 그런 이야기들에 귀를 닫고 지낸다.


그런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켜 보수냐 진보냐를 나누는 것이 그들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네가 가까이 지내는 수잰 숄티나 조갑제나, 그런 사람들이 이런 극단적 논리의 오류에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째 조금씩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미국의 CIA 국장이 "지금의 미, 북 관계는 허니문 상태"라고 말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미국에도 노무현 같은 놈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과연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입을 모았다.


바로 그저께 이명박이 새로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이가 국회청문회에 전투복 차림으로 나와서 북한 핵 기지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선제타격'을 할 수도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오랜만에 국회에서 전투복을 입은 국방부 장관을 보면서 역사가 거꾸로 도는 법도 있는지를 실감했다.


그렇게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태도 변화에 오히려 당혹해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하토야마의 민주당이 전후 50년을 일당 독주해 온 자민당을 무너뜨렸다. 이걸 보고 한국에서는 일본에 노무현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일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당혹해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의 최근 사태 추이를 보면서 놀랐다면 그것은 어리석다.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아니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상식이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화무십일홍이고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한 가지만을 우기는 사람들을 그래서 꼴통이라고 한다. 생각이 유연하지 않으면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계속)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더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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