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릭부터 코폴라까지 예술가 48명 조명한 신간 '예술이라는 일'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소피아 코폴라는 영화 '대부'를 연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이다. '대부 3'에 연기자로 나왔는데, 아버지 후광을 등에 업고 출연했다는 악평을 얻었고, 그 뒤로 카메라 앞에 서는 일에서 쫓겨났다.
대신 그는 카메라를 잡고 직접 연출자의 길로 들어섰다. 영화배우로는 모자랐을지 몰라도, 연출가로서의 재능은 충분했다.
그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로 평단의 호평(아카데미 각본상)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고, 커스틴 던스트가 출연한 '마리 앙투아네트'(2006)로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승선했다.
그리고 2010년 '썸웨어'로 베네치아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을까. 그는 왕도는 없었다고, 꾸준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옛 격언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어요. 화가로서 저는 형편없었죠.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단계가 있어요. 엉망진창인 상태로 보이다가도 갑자기 어느 순간 그림이 되어 있는 거예요. 영화도 그런 것 같아요.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내죠."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루이즈 글릭은 "매일 산책을 길게" 한다. 자연에서 시적 영감을 받고, 시행을 다듬는다.
그는 어린 시절 거식증에 걸려 고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때 걷기를 시작했다. 매일, 문자 그대로 '모든 날'을 걸었다. 그러다 영감이 불쑥 찾아올 때면 빵집에 들러 펜과 종이를 빌리기도 했다. 물건을 사고 남은 영수증에 쓰는 경우도 많았다.
시 한 편을 쓰는데 빠르면 10분, 막히면 2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는(At the end of my suffering) / 문이 하나 있었지(there was a door)…" (시 '야생붓꽃' 중)
글릭은 영감의 찾아오는 순간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다 단어 하나를, 시 한 구절을 찾게 되면, "교황을 영접한 가톨릭 신자 같은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저한테 글쓰기에서 정말 힘든 건,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뭔가를 하려고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시는 못쓰게 돼버립니다. 부자연스러워지죠. 발견하는 대신에 머리로 배열을 만든 것이니까요."
최근 출간된 '예술이라는 일'(어크로스)은 예술가들이 받는 영감의 원천을 추적한 인터뷰집이다. 40년 경력의 저널리스트이자 화가인 애덤 모스가 예술가 48명의 삶과 예술에 대해 전방위적인 대화를 나눈 기록을 담았다. 코폴라와 글릭을 비롯해 브로드웨이의 대부 스티븐 손드하임,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 '소금, 지방, 산, 열'의 저자이자 요리사 사민 노스랏, 안개로 지은 '블러 빌딩'으로 100만명을 운집시킨 건축가 엘리자베스 딜러, 대형 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작가 그레고리 크루드슨 등 유명 예술가와 작가들의 이야기가 책에 수록됐다.
저자는 2년 남짓한 기간 인터뷰를 이어가며 그들이 느낀 영감의 순간, 의심과 고뇌의 시간, 창작을 위한 루틴과 기법을 채집했고, 이를 370여 컷의 도판 자료와 함께 책에 녹여 냈다.
저자는 세계적인 수많은 예술가를 만나며 창작의 비밀을 밝히려 했지만 끝내 성공하진 못한다.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게 재능의 영역인지, 노력의 영역인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에 대한 답도 얻지 못한다. 다만, 예술가들의 일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알게 된다.
"그들은 프로젝트의 종료를 설명하면서 안도감을, 어떤 의미로는 피로감을 내비쳤다. 어쩌면 짧은 흥분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했지만, 그들이 자기 작품에 자부심을 느꼈음을 나는 알았다. 하지만 그들을 침대에서 나오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이 예술가인 것은 그들이 온통 예술 창작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승리의 영광은 한순간이다. 투쟁은 일상이다."
이승연 옮김.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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