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 출간
"꿈을 꾸는 동안 영원히 청년…역사 만드는 건 도전뿐"
"솔선수범하고, 희생해야 존경…존경받지 못하면 좋은 리더 될 수 없어"
"꿈을 꾸는 동안 영원히 청년…역사 만드는 건 도전뿐"
"솔선수범하고, 희생해야 존경…존경받지 못하면 좋은 리더 될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인 1953년, 서울대 농대 진학이 사실상 결정돼 있던 전남 강진의 농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무모한 도전"을 한다.
서울대를 나온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서울대 가봐야 나처럼 너희랑 입씨름만 한다. 나라면 바다 계통 학교로 가 바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겠다"라는 말을 듣고 부산 수산대(현 국립부경대)에 진학한다.
막상 가보니 당시 우리나라 바다는 남획으로 고기 씨가 말라가던 상황이어서 고시를 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수산대를 졸업한 그는 참치잡이 국내 원양어선 1호인 지남호에 올랐다. 베테랑 선원만 태운다고 했지만, 그는 월급을 안 받겠다며 배에 태워달라고 읍소했고 1년간 무급 항해사로 일했다.
이 경험 덕분에 그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장이 됐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일궈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털어놓은 자신의 이야기다.
김 명예회장은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이라는 경영 에세이를 내고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에서 강연회를 열어 동원그룹 임직원과 독자를 만났다.
1934년생으로 올해 91세인 고령에도 약 40분간 꼿꼿이 선 채로 책의 메시지인 '도전 정신'을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이어 독자와 기자들의 질문에도 대답했다.
김 명예회장은 자신이 성공하는 데 도움을 준 두 사람으로 바다 관련 진로를 권유한 선생님과 자신에게 사업을 하라고 제안한 일본인 사업가를 꼽았다.
월급쟁이로 일하던 시절 "배를 빌려줄 테니 고기 잡아서 갚으라"며 밀어줘 창업을 결심하고 1969년 동원산업[006040]을 차렸다는 것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회사를 대기업으로 키웠지만 뼈저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하고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라는 격언을 실천해 여러 사업에 도전했는데 카메라 사업은 가장 큰 실패로 끝났다. 국내에서 가장 큰 기업이 후발 주자로 뛰어들면서 출혈 경쟁하다 큰 손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그는 "내 도전이 결코 매번 성공하진 못했다.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고 있다"면서 "동원그룹은 지금도 여전히 도전 중이다. 이차전지 배터리, 자동화 항만, 육상 연어 양식 등이 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를 만드는 것은 결국 도전뿐"이라면서 "도전은 젊은이의 특권이니 많이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명예회장은 강연에서 20차례 넘게 '도전'을 언급했다.
그는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AI)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2020년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인공지능(AI) 교육과 연구를 위해 써달라며 개인 재산 544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명예회장은 "청년이란 한때가 아니라 꿈을 꿀 때라는 말이 있다"며 "꿈을 꾸는 동안에는 영원히 청년으로 남는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여전히 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김 명예회장은 한국과 중국이 협의해 서해에서 초음파 등 전자 장벽을 설치해 넓은 바다를 통째로 연어 양식장으로 만드는 "엉뚱한 꿈"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중국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바다를 어장으로 만들 수준이 되지 않아 쉽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언젠가 후배들이 바다목장의 꿈을 이뤄주지 않을까"라고 썼다.
동원그룹은 단백질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연어를 육상에서 양식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심층 해수를 끌어오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기획재정부가 예비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김 명예회장은 큰아들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둘째 아들인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옛날처럼 명령으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솔선수범을 보이고 희생해서 존경받아야 한다. 존경받지 못하면 좋은 리더(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장남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원양어선에 타도록 했으며 차남은 참치 공장과 청량리 도매시장 영업사원을 거치도록 하면서 현장을 가르쳤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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