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산불에 지친 국민 위로하고 분열 극복 염원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입니다.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연등을 보면서 나라에 어려운 일이 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요." (69세 여성)
한국 사회에 혼란과 상처가 이어지는 가운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규모 연등행렬이 부처님오신날(5월 5일)을 아흐레 앞둔 26일 서울 중심가에서 이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등 불교 종단들로 구성된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이날 오후 서울 동대문(흥인지문)을 출발해 보신각 사거리를 거쳐 조계사까지 가는 '불기 2569년(2025년) 부처님오신날 연등행렬'을 개최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불교계 주요 인사와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등 정부 관계자, 불교 신자와 시민 등 약 5만명이 행렬등을 손에 들고 종로를 따라 행진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이 어린이날과 같은 날짜인 점에 착안해 미래 사회를 이끌 주역인 어린이들이 행렬의 선두 그룹에 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파면, 대규모 산불 등을 겪으며 사회적 혼란과 상처가 이어지는 가운데 희망을 간직하고 화합을 모색하자는데 연등행렬의 방점이 찍혔다.

진우스님은 봉행사에서 "산불로 인해 생을 다하신 분들과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받는 재해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연등의 자비로운 빛이 그들에게 다시금 희망의 등불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혼란과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화합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며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 따뜻한 시선, 그리고 행동하는 자비가 바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연등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사천왕, 코끼리, 사자, 용, 봉황, 거북이, 연꽃, 관세음보살, 문수동자, 동자승, 룸비니동산 등 불교 및 전통문화 관련 소재를 종이와 물감 등으로 형상화한 대형 장엄등이 어두워진 종로를 오색 빛으로 물들였다.
스누피 캐릭터나 토마스 기차 등 어린이에게 친숙한 현대적인 캐릭터로 만든 등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은 전통악기의 신명 나는 리듬에 맞춰 연희단이 선보이는 율동에 환호하며 일상의 스트레스와 근심을 날렸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온 한 남성(67)은 "나라가 태평해지고 모든 사람이 자비심을 지니고 살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고, 전업주부라고 밝힌 한 여성(50대 후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 사찰이나 불교 단체 사부대중은 물론 미얀마·태국·캄보디아·네팔·베트남·대만·방글라데시 등 외국 사찰에서 온 참가자들도 함께 행진하며 활기를 더했다.

행진 후 보신각 사거리에서는 남녀노소가 어우러져 대규모 강강술래를 하고 특설 무대에서 '트로트 신동' 김태연과 '조선팝 창시자' 서도밴드가 공연하는 대동한마당이 열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연등행렬은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연등회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원활한 행사를 위해 종로 일대의 교통이 일부 통제됐다.
27일에는 조계사 인근에서 전통문화마당, 미니 연등행렬,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난장 등이 이어진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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