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타거나 그을린 사과·복숭아나무…농민 "농사 기반 다 잃어"

(영덕=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10년 넘은 사과나무 상당수가 불탔습니다. 다시 농사를 지으려면 몇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31일 경북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에서 만난 배삼연(65)씨는 "농사 기반을 다 잃었다"며 하소연했다.
의성에서 시작된 '경북 산불'은 지난 25일 영덕까지 번지면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배씨의 농장에 있는 대규모 저온창고 2곳이 모두 탔다. 창고 안에 보관된 과일도, 농장 주변에 있는 농기계도 잿더미가 됐다.
집은 겉만 멀쩡할 뿐 여기저기 타거나 녹아내렸다.
무엇보다 배씨를 가슴 아프게 만든 것은 자식처럼 키워온 사과나무가 여기저기 불에 탄 일이다.
이날 둘러본 농장의 사과나무 중 산불이 지나간 곳 주변의 나무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대다수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였지만 불길이 닿았던 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런 과수원 풍경은 산불 피해가 큰 지품면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보다는 상대적으로 불에 강하다고는 하지만 불길이 지나간 과일나무는 생육에 지장받을 수밖에 없다.
지품면 복곡리나 원전리, 황장리에도 산불이 지나간 밭에는 배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가 여기저기 타거나 그을려 있었다.
지품면은 송이와 사과가 특산품인 곳이다.
나무가 모두 탄 과수원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산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타거나 그을린 과일나무가 쉽게 보였다.

복곡리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70대 주민은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꽃눈이 나올 시기인데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앞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가지를 만져보면 쉽게 부러진다"고 말했다.
황장리에서 만난 주민도 "사과나무가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불길이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지나 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많은 농민은 집이나 창고가 타면서 농기계, 비료, 농약마저 타버려 당장 과일나무꽃이 따줘야 할 시기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영덕군은 산불 진화를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피해 조사에 나서 아직 농업 관련 피해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오늘부터 농작품 피해 조사에 나섰기 때문에 1주일 정도 지나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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