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9쪽 지침…中 '대만 점령' 저지·美본토 방어 최우선
"러·북·이란 등 위협 억제 대부분 역할 동맹국에, 국방지출 압박"
주한미군 방위비·역할변화 영향 주목…美의회, 새지침에 '당혹'
"러·북·이란 등 위협 억제 대부분 역할 동맹국에, 국방지출 압박"
주한미군 방위비·역할변화 영향 주목…美의회, 새지침에 '당혹'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최근 미 국방부에 공유한 새 지침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미 본토 방어 등을 최우선으로 전환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동시에 동맹국에는 북한 등의 위협을 억제하는 역할을 대부분 맡기기 위해 방위비 증액을 압박할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WP는 전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헤그세스 장관은 이달 중순께 미 국방부 내에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으로 알려진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자신의 서명과 함께 대부분의 페이지에 '기밀, 외국 국적자에 공개 금지' 표기가 된 문건에서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으로 전환했다.
또한 국방부는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에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고, 유럽,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국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는 방위비 증액 압박을 통해 동맹국이 북한 등의 억제에서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지침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칭하면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한화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최근 "엘브리지 콜비가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될 것인데, 그들(콜비와 국방부 당국자들)은 거의 확실히 한국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역할 범위를 북한에 맞서 동맹국인 한국을 지키는 것을 넘어 대만해협 위기 대응 등으로까지 확대하려 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WP는 이 문건이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포함한 외부 위협에서 미국을 수호하고,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상세히, 폭넓게 기술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2017∼2021년) 당시에도 중국을 미국에 가장 큰 위협으로 간주, 태평양 권역에서 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헤그세스 장관이 이번에 배포한 지침은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를 다른 잠재적 위협보다 우선시해야 할 시나리오로 전제하면서, 방대한 미군 조직체계가 인도·태평양을 향하도록 재조정했다는 점에서 놀랍다고 WP는 평가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침에서 "중국은 국방부의 유일한 '추격하는 위협'(pacing threat)이며, 중국이 대만점령 기정사실화를 거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지키는 건 국방부의 유일한 '추격하는' 시나리오"라고 적었다.
'추격하는 위협'은 갈수록 고조되는 중국의 도전에 맞서 군사력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사용해 온 표현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군조직을 어떻게 구축하고 자원을 배분할지에 대한 개념 계획인 '군사력 기획 구상'에서도 강대국간 전쟁과 관련한 비상대응책 수립과 관련해선 중국과의 분쟁만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에는 미국으로의 불법이민과 마약밀매 대응에서 미군이 더 직접적인 역할을 하도록 지시하는 내용과, 미국을 공격할 역량과 의도를 지닌 집단에 대한 대테러 임무에 집중할 것이란 내용도 포함됐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를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국제적 테러를 감행하지는 않는 무장세력들에 대해서는 대응 우선순위를 낮추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침은 미 의회의 국가안보 관련 위원회들에도 제공됐다.

다만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미 의회 관계자들에게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WP는 보도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핵심 교역로인 홍해를 막으려 드는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을 폭격하고 이란을 압박하는 등 중동에 적극 개입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와 배치되는 내용이란 것이다.
한편, 헤그세스 장관이 배포한 지침은 보수 성향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발간한 '프로젝트 2025' 보고서와 일부 구절에서 표절 정도로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WP는 전했다.
프로젝트 2025년 미 대선을 앞두고 차기 정부의 정책과제를 망라해 '트럼프 2기 청사진'으로 불린다.
이 보고서는 대만 침공 저지, 국토 방어, 동맹 및 협력국과의 부담 공유를 미 국방부의 3대 우선과제로 제시했고,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알렉산더 벨레즈그린은 현재 임시로 국방부에 합류, 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미 국방부와 헤리티지 재단 측은 관련 질의에 즉각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임시적 지침 성격으로 배포된 이번 문건이 어느 정도까지 구체화하고 실질적 행동이 뒤따를지는 아직 확실히 알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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