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법적 문제 없어" 거듭 항변…국회서는 "깊이 반성" 고개 숙여
정치권·전문가는 일제히 비판 가세…"여름 선거 앞두고 구심력 더 저하" 분석
지지율 하락시 '끌어내리기 본격화' 관측…자민당, 연이은 정치자금 문제에 동요
정치권·전문가는 일제히 비판 가세…"여름 선거 앞두고 구심력 더 저하" 분석
지지율 하락시 '끌어내리기 본격화' 관측…자민당, 연이은 정치자금 문제에 동요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총 1천500만원 규모의 '상품권 배포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작년 10월 취임 이후 반년 만에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그간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연루 의원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거듭 요구하며 압박을 가했던 이시바 총리가 이번에는 정작 본인이 정치자금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후배 의원들에게 적지 않은 금액의 상품권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초선 의원 15명에게 사비로 100만원 상품권…野 "퇴임 불가피"

14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 사무소 관계자는 지난 3일 초선 중의원(하원) 의원 15명에게 1인당 10만엔(약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초선 의원들과 회식을 맞아 사비로 기념품을 대신해 상품권을 준비했다며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이날 오전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과 만나 "정치활동에 대한 기부가 아니며 정치자금규정법 문제에도 해당하지 않고 공직선거법에 저촉하지도 않는다"며 위법성은 전혀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분께 걱정을 끼친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깊이 사죄한다"고 덧붙였다.
의원 대부분은 이시바 총리 사무소 측에 상품권을 돌려줬고 이시바 총리도 불법 행위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 언론은 정권 존속 위기로 이어질 만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간부는 "퇴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고, 같은 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총리 측도 상품권을 받은 의원 측도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내부에서도 동요가 생기고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회자할 것"이라는 집행부 관계자 발언을 전했다.
연립 여당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보도를 접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며 "국민 이해를 얻을 수 없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 배포 취지가 위법성 판단 기준 될 듯…시민단체는 고발장 제출

아사히신문은 정치단체 간 금전 수수는 불법이 아니지만 개인이 정치가에게 금전 등을 기부하는 것은 금지되는 만큼 정치자금규정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총무성은 상품권 등 유가증권이 금전에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면서 기부금을 수수한 양측 모두 1년 이하 금고형이나 50만엔(약 49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자금규정법에는 "누구도 공직 후보자의 정치활동에 관해 기부(금전에 한하며 정치단체는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공직선거법은 "공직 후보자나 공직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해당 선거구 내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명의로도 기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치학자인 이와이 도모아키 니혼대 명예교수는 "10만엔은 사회 통념상 기념품으로 통용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문제에서 위법성을 좌우할 기준은 '배포 취지'라고 분석했다. 이시바 총리는 의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상품권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닛케이는 "정치활동과 무관한 사적인 기부라면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정치활동 범위는 법령상 정의가 없어서 사안별로 판단하게 된다"고 짚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치활동 범위는 폭넓게 해석될 수 있으며 회식 장소와 대화 내용이 판단 기준이 된다고 지적하고 "지지를 요청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정치활동과 관련된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시민단체는 이시바 총리와 상품권을 받은 의원 15명에 대한 고발장을 이날 오후 도쿄지검에 제출했다.
◇ 저조한 지지율·트럼프 관세에 악재 추가…이전 정권들도 정치자금 문제
이시바 총리와 정부는 일단 사태 진정을 모색하겠지만, 야당은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지지통신은 예상했다.
이시바 총리는 당장 예산안 통과 등을 위해 국회에서 야당 질의에 답변하고 협조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라 상품권 스캔들은 정국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날 오후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여·야당 의원들은 이시바 총리를 상대로 상품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시바 총리는 "과자, 과일, 손수건 등을 (사서 가족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달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해명하고 "세간의 감각을 잃은 것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상품권을 배포한 횟수에 관한 질문에는 "양손으로 세기에 충분하거나 부족한 정도"라며 사실상 10회 안팎이었다고 답했다.
요미우리는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내에서 총리의 정권 운영에 대한 불만이 축적되고 있다"며 "이번 문제로 당내 구심력 저하가 더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도쿄신문은 "정치자금은 기시다 후미오 정권뿐만 아니라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정권에서도 문제가 됐다"며 아베·스가 정권 당시에도 정치자금 문제가 정치 불신과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고 해설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움직임도 이시바 내각 지지율 상승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애초 일본 내에서는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서 관세 등 껄끄러운 사안이 거론되지 않자 이시바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이런 낙관적 기류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에서 일본이 제외되지 않은 데다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백악관에서는 일본의 최대 민감 품목인 쌀의 관세율을 문제 삼는 발언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 당내 보수파 연일 '이시바 흔들기'…차기 주자는 아직 오리무중
초선 의원들에게 상품권을 건넨 이시바 총리는 오랫동안 자민당 내 비주류로 활동했다. 당내 기반이 약한 그는 정치자금 문제에 줄곧 비판적이었고 아베 신조 전 총리를 향해서도 쓴소리했다.
아베 전 총리 이념을 따르는 자민당 보수파는 이번 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연일 총리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이시바 흔들기'를 시도했다.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과 고바야시 다카유키 의원은 최근 이시바 총리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옛 아베파 출신인 니시다 쇼지 의원은 이날 "예산안이 통과되면 사명을 다한 것이므로 퇴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달 주요 언론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으로 나온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가 이를 버티지 못할 경우 보수파는 직전 총재 선거 결선까지 올랐던 다카이치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있지만, 다카이치 의원은 중도 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견해가 제기된 바 있다.
아울러 총재 선거 3위였던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작년 10월 중의원 선거(총선) 당시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이었으나 여당이 과반 의석 달성에 실패하자 물러났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달 3일 초선 의원 회식에 참석한 터라 이시바 총리를 향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이시바 총리를 대신할 후보가 마땅치 않으면 자민당 의원들이 당분간 여론을 살피며 관망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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