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촛불 대신 응원봉, 선결제 커피까지…달라진 집회 현장
연합뉴스
입력 2024-12-14 08:00:02 수정 2024-12-14 08:00:02






(서울=연합뉴스) 겨울밤 화려한 축제 같은 분위기.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도, 댄스파티도 아닌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 현장입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된 이후 국회 앞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곳곳에선 촛불이 아닌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응원봉이 눈에 띄는데요.

"저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제일 소중한 '꺼지지 않는 빛'이 응원봉이라고 생각해서 들고나왔어요."

지난 11일 여의도 국회 앞을 찾은 신지현(35) 씨는 K팝 팬덤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신씨는 "원래 응원봉은 콘서트장에서 흔들어야 하는데 여기 국회 앞에서 흔들고 있는 게 조금 슬프다"고 했습니다.

집회 참가자 박재은(35) 씨는 "탄핵은 무서운 건데, 그래도 조금이나마 즐기는 마음으로 다 같이 즐겁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응원봉을 들고나왔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시위에 나선 윤한별(31) 씨는 "응원봉은 소중한 물건이라 평소 아크릴 장 같은 데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나오신 분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허슬기(35) 씨는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로 시위가 진행되니까 많은 분이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응원봉과 K팝이 집회 참가의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 속에 외신들도 한국의 시위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촛불 대신 응원봉을 흔들며 K팝 인기곡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무겁고 진지한 시위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겁니다.

집회 장소에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나온 40∼50대들도 많은데요.

딸이 건네준 응원봉을 들고나왔다는 정강훈(57) 씨는 "시위 현장의 에너지가 촛불을 들고 할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영(53) 씨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응원봉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자연스럽게 민주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습니다.

국회 앞에는 '달팽이확대연구회' '논문 쓰다가 뛰쳐나온 사람들' '전국 공개고백장려협회' 같이 재치 있는 문구가 돋보이는 깃발을 들고 온 사람도 많아졌는데요.

'전국 공개고백장려협회'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나온 민지환(17) 군은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의 그 용기로 나라를 구하고 싶어서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고, '전국 쿼카보호협회' 깃발 제작자 지혜준(28) 씨는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쿼카라는 동물을 좋아하는 저처럼 평범한 시민들도 시위에 나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깃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돌 응원봉과 함께 '선결제'도 새로운 집회 문화로 떠올랐는데요.

수령자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미리 주문하는 선결제를 통해 집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음식과 음료로 마음을 전하고 있는 거죠.

많은 사람이 커피나 간식값을 미리 지불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매장 위치를 공유해 시위 참가자들이 무료로 받아 가도록 하고 있는데요.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윤재영 씨는 "선결제 주문이 이미 30건을 넘는 것 같다"면서 "추운 날씨에 따뜻한 음료를 미리 결제해주시는 걸 보면 '대한민국이 아직은 살 만한 곳이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습니다.

국회 근처 또 다른 커피전문점 사장 조호연 씨는 "하루에 두세분씩 꾸준히 선결제해주고 계시는데 얼마 전에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분이 마음으로 동참하고 싶다며 커피 1천 잔을 후원해주셨다"고 밝혔는데요.

실제로 이 커피전문점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 1천 잔을 선결제한 사람은 프랑스에서 '그리다'(활동명·39, 미술관 큐레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여성입니다.

그리다 씨는 "한국에서 계엄 사태가 터지자 당장 한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비행기 푯값으로 따뜻한 커피를 드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선결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어머니가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다고 밝힌 그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보태 치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저희 엄마 몫까지 더해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한 집회 참가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미리 결제해 놓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위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흥겹고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도 진지함과 절실함이 느껴지는 국회 앞. 평범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류재갑 기자 정지연 인턴기자 송해정 크리에이터 촬영 오세민

jacobly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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