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대학생들이 막 간다고? 부모가 금쪽이로 키워놓고 꼰대질 하나"
연합뉴스
입력 2024-11-26 06:05:01 수정 2024-11-26 06:05:01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명예교수 인터뷰
의대 휴학·동덕여대 사태에 "무조건 따라오라는 기성세대에 반감"
"부모가 지나친 경쟁의식에 빠져 자식을 성공지상주의로 몬 탓"
"경쟁 피로감 너무 커진 상태…입시제도에 변화줘야"


거수로 공학전환 찬반투표 진행하는 동덕여대 학생들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동덕여대가 공학 전환을 논의했다고 알려지며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2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학생들이 교내 운동장에서 학생총회를 열고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과 관련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2024.11.20 cityboy@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동덕여대 재학생들의 과격 시위가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학교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고 부르짖는 여대생들을 보면 환자를 외면하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가정과 학교, 직장의 권위주의 문화를 묵묵히 견딘 기성세대들은 묻는다. '선진국'에서 태어나 공부 말고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온 너희들이 왜 이렇게 과격해진 것인가. 대학 강사와 교수로 40년 동안 봉직하며 학생들과 심리상담을 해온 서울대 곽금주 명예교수를 만나 '젊은 그들'을 들여다봤다. 곽 교수가 내린 결론은 '모든 건 부모 탓'이었다.

인터뷰하는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서울=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의료 대란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여전히 비판 일색이다. 의사 수 좀 늘리는 게 그리 문제냐는 건데.

▲ 의대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치열하게 경쟁해서 의대까지 왔는데 앞으로 혜택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졸업하고 나면 경쟁자가 2~3배 더 늘어나는 게 현실이 됐으니까. 실력 안 되는 학생들과 같이 수업받는 게 싫다는 심리도 있다.

전공의들도 특권의식을 내려놓기 어렵다는 점에선 의대생과 같다. 더구나 전공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래를 보고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그걸 보장, 보상해주긴커녕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니 배신감, 부당성을 느끼는 것이다.

텅 빈 의대 강의실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학생들의 수업거부로 텅 빈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 psik@yna.co.kr

-- 동덕여대 사태도 같은 차원인가.

▲ 그렇다. 요즘 세대는 충분히 이해시켜야 따라온다. 여대 온 것도 그들의 기득권이며 정체성을 규정짓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전 설명도 없이 남녀공학 하자고 하니 엄청나게 반발하는 것이다. 반발이 과격해진 것은 '여자라고 깔보면 안 된다'는 심리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렇다고 자기가 다니는 학교 시설까지 훼손하는 건 과하지 않나.

▲ 젊은 세대들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더구나 (공학 전환을 위한) 합리적 근거도 대지 않아서 과격해지자는 심리가 퍼졌다. 나이 든 세대들은 그런 짓을 어떻게 하느냐며 폄하만 하면 안 된다.

지금 '환자들이 죽어도 좋다' 하는 식으로 막 가는 것은 어른들이 저렇게 키워놨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갑자기 꼰대질을 하고 있다.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대안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다.


-- 사시 선발도 100명에서 갑자기 300명, 2천명으로 늘렸는데 반발이 없었다.

▲ 응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법대생만 사법고시 봤는가. 문과든 이과든 고졸이든 누구나 다 사시 볼 수 있었으니 집단적 힘이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다. 반면 의사는 손 놓으면 병원이 정지된다. 의사 같은 존재는 쉽게 건드리면 안되는 직역이다. 실수한 것이다.


-- 조국 사태에 분노한 학생들이 정부의 의대생 봐주기엔 침묵하고 있는데.

▲ 요즘 학생들은 계산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이 무척 강하다. 자기 이득과 상관없는 것이면 관심도 안 갖는다. 의식변화의 추세를 분석해보면 2010년을 전후로 사랑, 연애 등 낭만 따위는 학생들의 고민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취업과 진로, 성공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결혼하는 것도 싫어한다. 지나친 경쟁으로 종족본능이 줄어드는 것이다. 저출산은 경제 발전을 경험하는 동유럽과 동남아 국가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 아직도 다수 여자들은 '남자보다 보수가 적다',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피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남자들은 '군대 다녀왔으니 보수가 좀 더 많은 것이다', '남자니까 야근하고 여자니까 집에 일찍 가는 게 공평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면 여자들은 '우리도 군대 가고 싶어한다'고 반박한다. 젠더 문제는 서로가 억울하고 서로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관계에 있다.


-- 남녀, 세대, 또래간 갈등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 먼저 급격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부모들이 과도한 경쟁의식에 빠져 자녀들에게 1등 해야 한다며 성공 지상주의를 심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도 좀처럼 만족할줄 모른다. 그래서 대학, 회사 서열에 굉장히 민감한 것이다. 특히 20대 Z세대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도 좌절과 무기력을 느낄 정도로 과도하게 강박적이다.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불일치가 심하다.


-- 불일치의 구체적 사례를 들자면.

▲ 청년 실업만 해도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이지만, 대부분 이상적인 직장을 찾는 원인도 있다. 일단 대학 가서 삼성 같은 대기업 가려 하지 않나. 삼성 가려면 중소기업부터 가서 인정받고 올라가야 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부모들이 '내 자식이 최고'라며 '금쪽이'로 키운 탓이다. 많은 부모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공부 시간표 짜주고 학원 뺑뺑이 돌리고 있다. 달리 보면 부모가 아이한테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가 어른이 돼도 부모가 뭐라도 계속 해줘야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나. 모든 문제의 반은 부모에게 있다. 아이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 '금쪽이'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나.

▲ 4050 세대는 그 부모 세대의 요구에 순응하고 살았다. 윗세대의 말을 잘 듣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누리고 살자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다.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 하지만, 부모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기 자식은 이해하려고 하고 남의 자식은 '왜 저래' 하며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 어른들이 어떻게 해야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까.

▲ 한국은 개인주의라고 하면서 여전히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집단주의가 혼재된 문화이지만, 성숙한 나라들이 갔던 길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실력 있는데도 대학 가지 않고 고시 붙었는데도 금세 관두고 다른 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고 위치에 올라가 봤더니 실망하고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 속도가 붙으려면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 무엇부터 바꿔야 하나.

▲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에 대한 피로감이 너무 커진 상태다. 대학입시 제도부터 유연하게 바꾸지 않으면 경쟁의 경직성을 풀지 못한다. 허울뿐인 스펙을 왜 입시에 넣어야 하나. 대입 지역할당제를 꼭 하자는 건 아니지만 시범적으로나마 입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 곽금주는 누구?

인간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환경과 연령에 따른 정신 및 행동 변화를 다루는 발달심리학의 권위자다. 서울대 아동학과 77학번으로 1993년 오산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5세에 강단에 섰으며 올해 정년을 넘겨 명예교수가 됐다. 활발한 방송 출연과 거침없는 언변으로 유명하다.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j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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