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한 마드리드 인근 도시

(마드리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스페인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여행지가 산재해 있다.
세비야 대성당과 절벽 위 다리로 유명한 론다, 알람브라 궁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산을 가진 곳이 스페인이다.
그러나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마드리드야말로 알고 보면 스페인의 모든 문화와 예술이 집대성된 명품도시다.
마드리드 시내와 교외 지역을 다녀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고 왜 이곳이 명품도시인지 알 수 있게 된다.

◇ 찬란한 빛 쏟아지는 엘 에스코리알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왕실 부설 수도원 '산 로렌조 데 엘 에스코리알'(San lorenzo de el escorial)은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펠리페 2세(재위 1580∼1598)가 세운 곳이다.
그는 산 킨틴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파한 1563년 전승 기념으로 수도권을 세울 것을 명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스페인 알카사르 건물로, 수도원으로는 세계 여덟 번째 규모다.
남북 207m, 동서 162m인 직사각형의 부지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건축물의 규모를 통해 권력의 크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펠리페 2세는 엘 에스코리알이 완성된 뒤 궁정과 제국의 행정 기능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왔다.
엘 에스코리알이 있는 마드리드 서북쪽의 구아다라마 산맥 언덕을 찾은 것은 초겨울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이곳의 장엄함을 보여줄 방법은 동틀 녘에 그 모습을 촬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버를 잡아타고 50km 떨어진 구아다라마 산맥 쪽으로 1시간을 달려갔다.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언덕 위로 붉은빛을 받은 알카사르가 보였다.
붉은빛을 받은 거대한 수도원은 보는 것만 해도 경이로웠다. 아무도 없는 수도원 사방을 돌아다니며 고즈넉함을 만끽했다.
거대한 수도원 앞을 지나는 것은 산책객들과 자전거 라이더들 뿐이었다.
엘 에스코리알 앞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낸 뒤 인근 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엘 에스코리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하는 모습이 보였다.
커피와 추로스 하나를 시켜놓고 망중한을 즐기다 동료들과 합류해 수도원 곳곳을 둘러봤다.
수도원은 역시 다리가 아플 정도로 넓었는데, 엘 그레코의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 등 다양한 예술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실상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한 상당수의 미술품이 이 엘 에스코리알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풍스러운 도서관과 역대 왕의 관이 보관된 지하의 무덤이었다.
카를로스 1세부터 현재의 부르봉 왕가에 이르기까지 12명의 국왕과 부인 등 24명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깊고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역대 왕들의 무덤은 은밀하고도 권위가 있어 보였다.

◇ '친근한 촌 동네' 친촌
마드리드 남동쪽으로 45km 떨어진 올리브밭 한가운데에는 고즈넉하지만 친근한 느낌의 촌(村) 동네 '친촌'(Chinchon)이 있다.
마드리드 시내를 벗어나니 올리브 나무가 재배되는 야트막한 언덕들을 잇달아 마주쳤다.
이런 올리브밭을 보며 40여 분을 달렸더니 스페인풍 기와 건물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조그마한 동네 친촌에 도착했다.
마을 전경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싶어 다 쓰러져 벽체만 남은 성으로 다가갔더니 출입이 금지돼 있다.
드론을 띄웠더니 신기한 장면이 눈에 띈다. 마을 한가운데 동그란 광장이 모니터를 통해 들어온다.
'마요르 광장'으로, 투우장을 겸하고 있는 곳이다. 투우장 근처에는 3∼4층 높이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봄·가을마다 투우 경기가 열리면 광장을 둘러싼 주변 건물 테라스에 앉아 투우 경기를 볼 수 있다.
땅바닥에 핏자국이 남아있어 물어보니 바로 전날 투우 경기가 끝났다고 한다. '아쉽다. 다음에는 꼭 시간을 맞춰 오리라.'
광장이 바라보이는 노천카페에서는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이곳은 스페인에서도 내로라하는 마늘 산지다. 광장 바로 앞에서 잡화점을 하는 마리아 펠리시아나(66)는 여섯 살 때부터 마늘 농사를 지어온 사람이다.
광장을 찾은 가이드도 마늘을 샀다. 스페인 사람들도 음식에 마늘을 많이 사용한다.
이곳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는 이유가 있었다.

◇ '왕가의 별장' 아란후에스
스페인에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음악들이 있다.
알람브라의 추억, 아란후에스 등이 그것이다.
시각장애인 음악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특히 애절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곡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호아킨 로드리고는 아름다운 강변을 거닐며 후각과 청각, 촉각으로 아란후에스를 느꼈을 것이다.
마드리드 남쪽의 아란후에스는 타구스강과 하라마강이 합류하는 곳에 들어선 궁전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봄에 머물 별장으로 쓰였다. 왕궁 주변에는 다양한 양식으로 정원이 조성됐다.
4계절마다 다양한 매력으로 어필하는 이 정원과 강을 끼고 있는 궁전 역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 500년 전통의 학술극장이 있는 알칼라 대학
라틴어로 논문 발표…교수들과 치열한 논쟁
스페인이 남미 대륙에 상륙한 지 500년이 지났다. 스페인 국기의 노란색은 영토를, 붉은색은 피를 상징한다.
그만큼 힘을 바탕으로 세계정복에 나섰던 스페인이지만, 학구열도 높았다.
가장 상징적인 곳은 마드리드 동쪽에 있는 대학 도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에 세워진 500년 전통의 알칼라 대학이다.
특히 세계적인 천재 문학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출생지이기도 한 알칼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알칼라는 1499년 세계 최초로 계획된 대학도시로, 세계의 수많은 대학도시가 이곳을 모델로 삼았을 정도다.
대학은 자체로 제정한 법규가 있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느낌의 이 도시는 걷는 것만으로도 상쾌했고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도 받았다.
대부분의 주민이 대학생이거나, 대학 관련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의 고향답게 이곳에서는 매년 세르반테스 스페인어 문학상이 열린다.
예로부터 학교 입학 조건은 꽤 까다로웠다. 귀족 출신이나, 이 지역 출신은 대학에 들어올 수 없었다.
배울 여건이 더 열악한 지방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 내부로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건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건물 가운데 하나는 논문을 발표하는 학술극장인 '파라닌포 데 우니베시다드 데 알칼라'(Paraninfo de la Universidad de Alcala) 건물이다.
올해로 만 500년을 맞는 이 학술극장은 페드로 데 라 코테라에 의해 설계되고 건설됐다.
그는 1517년 숨졌지만 시스네로스 추기경이 이어받아 건축을 계속했고, 1520년 완공됐다.
이 공간은 행사에 활용돼 왔다. 가장 의미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곳에서 열렸던 박사 학위 시험이다.
논문 발표자는 정면을 바라볼 때 오른쪽 연단 위로 올라간다. 그의 양쪽에는 지도교수 2명과 질문을 할 다른 교수 2명이 자리 잡아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교실 내에 앉은 다른 교수들도 질문과 답변을 하며 토론에 가담한다.
최상단의 관객석에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이 토론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대학 논문 발표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 현지 가이드를 맡은 A씨가 딸의 서울 소재 대학 진학과 현지 대학 진학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학술극장을 본 뒤 그에게 알칼라 대학 진학을 추천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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