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없는 학생선수들] ②"운동만도 벅차" vs "공부는 학생 본분"
연합뉴스
입력 2022-11-06 06:10:10 수정 2022-11-07 09:17:22
"非엘리트 학생선수가 절대다수…사회 진출 위해 공부는 필수"
"훈련으로 녹초 된 아이들에게 일괄적 기준의 학습 강요는 가혹"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호 방법은'10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부 주최의 '학생선수 학습권 보호제도 개선방안' 공개 토론회 모습. [촬영 정한솔]

[※ 편집자 주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열기가 한창인 지금, 그 이면에는 프로 무대에 서기 위해 땀 흘리는 수천 명의 꿈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프로 문턱에서 좌절하는 학생선수가 1천 명에 달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이 '제2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학습권 보장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연합뉴스는 학생선수와 그 가족, 교육·체육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런 실태를 짚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기사 4편을 제작, 순차적으로 송고합니다.]

입장하는 전국체전 선수단10월 7일 오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정한솔 인턴기자 = "우리 아이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 시간으로 꽉 차 있습니다. 녹초가 돼서 수업에 들어가면 눈뜨고 버티기 힘들 정도입니다. 일반 학생과 동일한 잣대로 학력 기준에 미달하면 체육활동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아이들의 기본권 침해 아닌가요?" (서울체육중 펜싱부 자녀를 둔 학부모 김나운 씨)

"왜 아직도 학생선수들이 이렇게 죽으라고 운동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운동선수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과거 인식이 여전히 박혀 있는 탓입니다. 왜 전국체전에서 고등부가 존재해야 합니까?"(한태룡 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

[제작 정한솔]

지난 10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부 주최의 '학생선수 학습권 보호제도 개선방안' 공개 토론회에서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두고 격론이 오갔다.

학부모들은 "취지는 공감하나, 현장 실정과는 동떨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교육 관계자들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아가야 한다"고 맞섰다.

지금껏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경기에서의 성적을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이들이 새로운 진로 탐색에 어려움을 겪고, '제2의 삶'을 찾아 헤매는 은퇴 선수들이 늘면서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는 학생선수의 연간 대회 출전 일수를 제한하는 제도인 출석인정제 기준이 2019년 63∼64일에서 2020년 20∼40일, 2021년 10∼30일로 매년 강화된 이유이기도 했다. 올해는 초등학교 5일, 중학교 12일, 고등학교 15일까지 줄었다.

일정 성적 이상을 받지 못한 학생선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체육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최저학력제도 2024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 "학업과 운동 병행하기엔 24시간이 모자라"

고교 야구부 1학년인 아들을 둔 안진원 씨는 공개 토론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학생이 체력장에 탈락하면 수능을 치르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왜 운동하는 학생에게만 성적을 이유로 경기 출전에 대한 족쇄를 채우냐는 것이다.

안 씨는 "운동하는 학생도 공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현 제도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는 "운동을 마친 후에 졸음이 쏟아지는 아이들을 대신해 학부모들은 (온라인수업인) '이-스쿨'을 수강하고 있다"며 "자발적으로 책상 앞에 앉도록 유도하려면 채찍만 휘두를 게 아니라 적절한 당근을 쥐여주면서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씨는 "대다수 운동부 숙소에는 독서실은커녕 책상조차 찾기 힘들다"며 "학생선수의 취약과목 보강을 위한 방과 후 교사 도입이나 보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회 위원장(전 수도여고 교사)은 "현 출석인정제와 최저학력제는 마치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나 머리를 자르고, 작으면 사지를 잡아 늘여 죽인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와도 같다"며 "일괄적인 기준을 내세우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공부할지, 운동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훈련과 대회 출전, 학습 등을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성봉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의 학생선수가 소화하는 일주일 평균 훈련 시간이 27시간에 달한다"며 "이는 독일 등 스포츠 선진국보다 두 배가 넘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학생 선수 6만3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운동시간이 3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은 초등학생 49.1%, 중학생이 62.3%, 고등학생이 82.8%로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높아졌다.

주말에도 운동한다고 답한 비율도 초등학생 71.8%, 중학생 80.1%, 고등학생 83.1%에 달했다.



◇ "현실적 어려움 있지만 공부 놓아서는 안 돼"

한편으로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어렵다는 데 공감하지만, 학생이 펜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축구부와 펜싱부, 롤러부 등 세 종목의 운동부를 운영하는 서울 중경고의 김승겸 교장은 공개토론회에 참석해 "학생선수에게 공부를 강조하는 이유는 최소한의 기초학력을 습득해 어떠한 분야에서든 행복한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것은 유례없이 긴 훈련 시간 탓"이라며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운동시간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경기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앙고 야구부 출신으로 현재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입학을 준비 중인 윤준선(20) 씨는 "대입에 합격한다면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되고 싶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야구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아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야구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프로도 가고 메이저리그도 진출할 수 있을 거라 믿지만 현실은 냉정하다"며 "후배들에게 '너무 일찍 공부를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학습권 강화 기조가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를 나타낸다는 통계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생선수의 최저학력 미도달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17.7%였던 최저학력 미도달률은 2018년 14.2%, 2019년 14.5%, 2020년 13.3%, 2021년 10.9%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고교 학생선수의 최저학력 미도달률은 2017년 22.9%에서 지난해 12.8%로 크게 낮아졌다.

박 의원은 "미도달률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학생선수 10명 중 1명 이상은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세심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는 현장의 어려움은 알지만 '학생선수는 공부해야 한다'는 기조는 변함없다고 강조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으로 성공하는 학생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9명의 학생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라도 학습권 보장에 힘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엘리트 운동선수로 성공했다고 하더라고 30대 중반이면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현실에서 은퇴 후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아예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 "학습권 보장이란 단순히 국·영·수 등 주요 과목 성적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체험학습과 수학여행, 급우와의 어울림 등 전반적인 학교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도 기본 수업에 충실히 하면서 체육 활동을 병행하기에 우리도 그런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학부모와 학생선수 등 현장 의견을 수렴해 보완책을 고민하고 있다"며 "교육부와 협의해 출석인정제 기준을 현재보다 완화하고, 수업 결손에 대한 보완책 마련 등 다양한 방법을 내년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shlamazel@yna.co.kr


[글 싣는 순서]

①매년 야구 꿈나무 1천명이 '꿈' 접는다

②"운동만도 벅차" vs "공부는 학생 본분"

③그들이 '제2의 꿈' 찾을 수 있게 하려면

④좌절 딛고 일어선 힘도 "학교서 배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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