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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번' 류현진이 열고 '1번' 문동주가 닫는다는 것…한화의 시간 위에 피어난 가을의 낭만 [PO3]
엑스포츠뉴스입력

류현진이 무너져도 문동주가 버틴다. 우리는 한화 이글스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다.
한화는 21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포스트시즌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5-4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시리즈 전적 2승1패를 만든 한화는 2006년 이후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단 1승 만을 남겨두게 됐다.
19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신인이었던 류현진은 한국과 미국 무대를 평정한 뒤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3회까지 잘 던지던 류현진은 4회에만 홈런 두 방을 맞고 흔들리며 역전을 허용했고, 결국 5회부터 불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4이닝 4실점 교체.
5회를 실점 없이 막은 김범수는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이날 세 번째 볼넷을 내주자 한화 벤치가 곧바로 움직였다. 문동주의 두 번째 등판. 문동주는 1차전에서 불펜으로 등판해 2이닝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고, 이날 그는 국내 투수 최고 구속인 162km/h를 마크하기도 했다.


1차전 만큼의 구속은 아니었지만, 승부가 팽팽했던 만큼 이날 문동주의 투구는 오히려 더 압도적이었다.
5-4 한 점 차의 스코어, 무사 1루 상황 이재현에게 직구, 김태훈에게 포크볼로 연속 헛스윙 삼진을 잡은 문동주는 강민호를 2루수 땅볼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7회에는 대타 박병호에게 우전안타를 맞았고, 김지찬의 희생번트 후 김성윤의 땅볼로 2사 주자 3루에 몰렸다. 이후 구자욱에게 볼넷을 내주고 폭투가 나오면서 2사 2, 3루 위기. 모든 이들이 문동주의 공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문동주는 곧 디아즈와의 7구 승부 끝, 그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으면서 이닝을 정리하며 크게 포효했다.
8회에도 김영웅 중전안타, 이재현 희생번트로 1사 2루가 됐지만 김태훈과 강민호에게 연속 삼진을 솎아내고 삼성 타선을 막았다. 피치클락 위반으로 초구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강민호는 스트라이크존에 찍힌 2구 커브, 3구 직구에 꼼짝하지 못했다.
여전히 1점 차의 살얼음판 승부에서 문동주는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이성규와 김지찬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 문동주는 김성윤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하고 다시 한 번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류현진은 따뜻한 포옹으로 경기를 끝낸 문동주를 반겼다. 공교롭게 류현진은 등번호가 99번, 문동주는 1번이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2018년이 될 때까지 가을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한화. 그런 팀을 '소년가장'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으로 지켰던 선수가 류현진이었다. 10이닝 동안 12개의 삼진을 잡고, 단 1실점만 하고도 웃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메이저리그로 향하기 전 마지막 경기였다.
2025년의 류현진은 4이닝 4실점으로 아쉬운 성적을 내고도 활짝 웃었다. 류현진이 사랑하는 한화의 4번타자 노시환이 역전 홈런을 쳤고, 자신 이후로는 처음으로 한화 소속으로 신인왕을 차지한 문동주가 누구보다 멋지게 남은 이닝을 책임졌기 때문에.
한화의 이름이었고, 이름이고, 또 이름으로 남을 선수들이 만들어 낸 낭만적인 경기. 두고두고 회자될 가을의 한 장면이다.



사진=엑스포츠뉴스 대구, 김한준 기자 / 한화 이글스 / 엑스포츠뉴스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