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어부들은 게가 잡히면 뚜껑이 없는 바구니에 무심하게 집어넣는다. 게들이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마리가 바구니 밖으로 기어나가려 하면 다른 게들이 다리를 잡아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어떤 게도 탈출할 수 없다는 걸 어부는 알기 때문에 뚜껑이 필요 없다. 게들은 충분히 살 수 있는데 결국 모두 죽게 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자면 '게 심보', '게 근성' 정도가 되겠다. 크랩 멘탈리티는 '내가 못 가질 바에야 아무도 못 갖게 하겠다'는 태도다. '적어도 네가 나보다 잘되는 건 막겠다'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런 심리 기제는 시기, 질투, 상대적 박탈감 등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심리학에서 굳이 이런 용어를 만들어낸 건 사람에게도 게 같은 본성이 잠재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어느 나라든 이 현상은 보편성을 띠겠지만 후진국일수록 많이 발현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웃과 동료의 다리를 잡아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퇴보하는 건 당연하다. 이른바 '하향 평준화'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크랩 멘탈리티가 발목 잡는 사회다. '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우리 스스로 이런 심리가 내재했음을 잘 안다는 얘기다. 조직 내에서 속칭 '잘 나가 보이는 사람'에 관해 좋지 않은 가십을 만들고 이를 공유해 확산하는 행동도 시기와 박탈감을 보상할 심리적 위안이 필요해서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성공한 유명인들이 나쁜 소문의 소재가 되는 이유다.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인 동시에 왠지 모를 불쾌감을 주는 존재다. 그래서 대중은 그들이 망가질 때 측은함도 들지만, 묘한 쾌감도 느끼는 양가적 감정을 보인다고 한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이런 근성의 폐해를 경계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어록 중에선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던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발언이 유명한데, 사실 더 날카롭게 현상을 꿰뚫어 본 건 발목 잡기를 콕 집어 경계한 말이었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는 얼마 뒤 일본에서도 임직원을 모아놓고 강조했다.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 많이 기여해.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 적게 기여해.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마라." 성과 내는 사람을 음해하고 끌어내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낫다는 경고였다. 그 이후 삼성은 기하급수적이라 묘사할 만큼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랐다. 소셜 미디어 발달은 '게 근성'을 더 키우는 촉매로 작용한다. 남들이 좋은 집, 멋진 여행지, 화려한 산해진미 등을 자랑하는 광경을 매일 보자니 박탈감이 더 커진다. 실시간으로 삶이 비교되니 나만 뒤처지는 듯한 조바심이 든다. 과거 같으면 안 봐도 될 걸 자꾸 접하게 된 현대인은 사실 불행해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온라인 메신저는 우리가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게 만든다. 그 말들 가운데 남에 대한 불필요한 험담이 적지 않은 부분을 채운다. 솔직히 험담과 소문을 주고받는 것만큼 재미있는 건 별로 없지만, 그러고 나면 오히려 자괴감에 빠진다. 크랩 멘탈리티를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결과적으로 그것이 모두의 발전을 막기 때문이다. 바구니 속 게들이 모두 생을 마쳤듯 남 끌어내리기가 일상이 된 공동체의 마지막이 다를 리 없다. 국가이든, 기업이든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는 구성원을 잘 걸러내는 게 조직 운영의 핵심이다. 아울러 이런 게 심보가 힘을 받지 못하도록 하려면 다수 구성원이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기준과 성과 보상책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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