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전쟁부로…트럼프, '전쟁영웅' 자칭하며 군사주의 기웃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끝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11월 6일 새벽(현지시간) 개표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에 지지자들 앞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약 10개월 뒤인 5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명칭을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갈아치웠다.
일단 이는 미군의 기능을 국가방어에 국한하지 않고 공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열어두겠다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러 왔다는 본인의 약속과 달리 대내외적으로 군사력 사용 카드를 상대적으로 쉽게 꺼내들고 있다.

더욱이 자국 내 민간 부문 문제에 군사력 투입을 적극 추진하며 군의 위상과 기능을 바꿔가는 까닭에 군사주의를 기웃거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를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해외 군사작전을 잇따라 강행하고 있다.

재집권 이후 첫 해외 군사작전의 표적은 소말리아였다.
취임 채 열흘도 지나기 전인 2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를 제거했다면서 "(조) 바이든(전 대통령)과 그 친구들이 망설이던 일을 내가 해냈다"고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인 3월에는 "압도적인 살상력"을 보여주겠다면서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를 겨냥한 대규모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이 작전은 51일 만에 종료됐다. 후티로부터 주요 무역로인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게 종료 사유였다.
그러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섣불리 개입했다가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자 발을 뺐다는 진단이 뒤따랐다. 후티는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에 대한 공격을 최근 재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장 대표적인 군사작전은 6월 이란 핵시설에 대한 폭격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시작한 이란과의 전쟁에 대다수 전문가들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뛰어들었다.
미국은 B-2 스피릿 전략폭격기 7대와 해군 잠수함들을 동원해 벙커버스터와 순항미사일로 이란 핵시설 3곳에 손상을 입혔다.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B-2 폭격기가 지구 반대편 이란까지 논스톱으로 왕복 비행하기 위해 공중급유기도 동원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작전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수십 년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핵시설이 완전히 복구불능 상태인지 무기급 핵연료가 파괴됐는지 등을 둘러싸고 작전 성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시설 폭격에 사용된 첨단 무기들을 미국의 군사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외교무대에서 거듭 과시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작전에 대해 "트럼프가 한때 비판하던 워싱턴 내 매파와 네오콘들(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기의 신보수주의자들)의 환상을 실현해줬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이 작전에 각별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보수 성향 언론인과 인터뷰에서 이 작전을 공조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전쟁 영웅"이라면서 "내 생각엔 나도 그렇다"며 본인을 전쟁영웅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지역에는 마약 문제를 구실로 거리낌 없이 군사력을 투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의 마약 카르텔 중 테러단체로 지정된 조직에 대해서는 군사력을 사용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다른 나라에 미군을 직접 투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의 '마약운반선'을 폭격해 "테러리스트" 11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남부 카리브해에 핵 추진 고속 공격 잠수함을 비롯해 7척의 군함을 파견 지시한 상태다. 4천500명 이상의 병력도 주둔 중이다.
이날 CNN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영토에 있는 마약 카르텔의 인프라를 폭격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신속한 폭격에 동원될 수 있는 F-35 전투기 10대가 베네수엘라와 가까운 푸에르토리코에 곧 배치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가는 나콜라스 마두로의 베네수엘라 정권을 겨냥한 작전이다. 여기에 필요한 수륙양용 훈련과 비행 작전도 푸에르토리코에서 수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군의 존재감은 미국 내에서 민간인들을 둘러싼 문제들에서도 유례없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로스앤젤레스(LA) 불법이민 단속 시위에 대응하겠다는 명목으로 주방위군을 대거 투입했다.
미국 대통령이 주지사의 동의 없이 주방위군에 지휘권을 행사한 것은 60년 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도 워싱턴DC에도 범죄 소탕을 명분 삼아 주방위군을 투입했다. 이어 시카고와 뉴욕 등 다른 대도시에도 주방위군을 투입하겠다는 태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이었던 6월 14일에는 워싱턴DC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던 이날 군인 약 6천700명, 차량 150대, 항공기 50대, 말 34마리, 노새 2마리, 개 한 마리가 참여했다.
당시 열병식 행사 과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 오르자 일부 관객은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국방부는 열병식 비용을 최대 4천500만달러(약 615억원)로 추산한다.
NBC와 ABC 뉴스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이 열병식에 세금을 사용하는 데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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