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확장주의' 한국에도?…주한미군 부지 소유권 언급 논란(종합)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기지 부지에 대한 소유권 요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트럼프식 '신(新) 확장주의'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도중 "우리는 (주한미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 엄청난 돈을 썼고 한국이 기여한 게 있지만 난 그걸(기지의 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원한다. 우리는 임대차 계약(lease)을 없애고 우리가 거대한 군 기지를 두고 있는 땅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감축 구상에 대해 기자로부터 질문받자 "그걸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친구였고,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뒤 돌출적으로 주한미군 기지 부지에 대한 소유권 관련 언급을 했다.
한미간의 기존 합의는 미군기지를 위한 부지에 대해 한국이 반환을 전제로 미국에 무상으로 빌려주는 것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2조는 "미국은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 내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공여(grant·무상제공을 의미)받는다"고 규정하는 한편 "미국이 사용하는 시설과 구역은 본 협정의 목적을 위하여 더 필요가 없게 되는 때에는 언제든지 합동위원회를 통하여 합의되는 조건에 따라 대한민국에 반환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한미동맹과 관련한 기본적 합의의 틀을 흔드는 언급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미국은 한미간 합의에 따라 주한미군 기지 땅에 대해서는 사실상의 통치권과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유권까지 갖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법 전문가는 26일 "영토 주권은 소유권과 통치권(행정권)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결정된다"며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에 입각해 미군기지 부지에 대해서는 행정권을 상당부분 양도한 셈인데 액면상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소유권까지 확보함으로써 미군기지 부지를 완전히 미국 땅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한미군 기지 부지를 미국 영토로 만들면 이론적으로는 부지 안에서 미측이 SOFA의 적용을 받을 필요도 없이 배타적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발언 이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재집권 이후 여러 차례 '확장주의' 야심으로 해석될 수 있는 외국 영토 관련 발언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소유할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가자지구 개발 구상을 밝혀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에 대한 소유권 내지 통제권 확보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병합하길 원한다는 발언도 했다.
이번 '미군기지 부지 소유권' 언급을 포함해 미국의 영토와 세력권을 확장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우선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미국 우선주의' 구호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
미국이 안보와 관련한 도움을 주고 있는 나라에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한다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접근방식과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장비 등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체결해 희토류 등 광물 개발과 관련한 권리를 확보한 바 있다.
여기에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 확장 DNA'가 재집권 이후 국가 경영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실현 가능성을 떠나 지지자들을 만족시키는 효과를 의식하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일회적 언급을 넘어 주한미군 부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을 지속해 요구하고, 그 문제를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 등과 연계할 경우 한미관계에 큰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자지구 소유와 캐나다 편입 등 주장을 하다 국내외 여론이 좋지 않자 최근 거의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이 문제도 협상의 진정한 목표라기보다는 다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회담 결과 관련 대언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더 알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주한미군에 대한 부지는 우리가 공여하는 것이지, 우리가 주고 무슨 지대를 받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질문에 한미 우호를 거론하며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일단 감축이나 철수를 지렛대 삼아 한국을 압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어 보이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미 국방부가 진행 중인 전 세계 미군 배치 조정과 관련한 검토와 국방전략 재검토가 끝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 논의 자체를 유보한 것일 수도 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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