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李대통령, 감정 배제한 정책 펼쳐야 국민 안심"
내달 취임 3주년…"'좋다·싫다'를 '옳다·그르다'로 착각 말아야"
"연민의 정에서 조국 사면 탄원"…"내년 남북 합동 법회나 北 관광 기대"
노동자 사망·이주노동자 차별 '우려'…올해 5년 만에 출가자 100명 이상 전망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사람들은 '좋다' 혹은 '싫다'라는 자기감정을 '옳다' 또는 '그르다'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하지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격한 대립과 갈등이 이어지는 것에 관해 사회 구성원들이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음 달 취임 3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계기로 2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진우스님은 "중도를 지니라는 것은 중간 입장을 취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양극단을 버려야 된다는 것"이라며 감정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진우스님은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자들이 명분을 놓고 대립하지만 잘 살펴보면 감정이 뒤섞여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감정에 치우쳐서 명분을 만들면 안 되고, 명분에 감정을 넣어도 안 됩니다. 세계사나 전쟁사를 보면 감정에 치우쳐서 전쟁도 일어났거든요."
지난해 12월 이후 한국 사회를 휩쓴 혼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이 "감정이 너무 치우쳐서" 생긴 측면이 있다고 진우스님은 진단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은 전임자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자기감정을 배제한 정책을 펼쳐야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정치인에게 특히 중요하지만, 일반인에게도 필요하다는 지론도 들려줬다.
"남녀노소 누구나 자기 마음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면 과보(果報)를 받지요. 소욕지족(少欲知足·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정신)이라는 말도 있듯이 절제해야 합니다."
진우스님은 욕심과 감정을 절제하면 마음이 점점 평안해질 것이라며 "당장 평안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결실을 거두듯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광복절 특사로 사면하기에 앞서 진우스님이 그의 사면을 공개적으로 탄원한 것이 주목받았다.
스님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는 내가 '이렇다 저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했다.
그는 일련의 사건으로 조 전 대표뿐만 아니라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형을 받아 복역했고 딸 조민 씨가 우여곡절을 겪은 점을 거론하며 "가족적인 측면에서 연민의 정을 좀 느꼈다"며 "사면을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산업 현장에서 이어진 노동자 사망 사고나 이주노동자 차별 및 인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약자들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측면에서는 미약한 면이 있습니다."
진우스님은 "생명 존중이나 인간에 대한 연민이 선행해야 하며 사업적인 이득은 그 뒤를 따라가야 한다"며 "관련 법령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부가 남북 관계 복원 의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불교계도 교류에 시동을 걸고 있다. 통일부는 조계종의 남북 교류 담당 조직인 민족공동체추진본부가 낸 북한 주민접촉 신고서를 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이 진우스님을 찾아와 중국 다롄(大連) 뤼순(旅順)박물관이 소장한 금강산 장안사 범종인 '기복종'(祈福鐘)과 인천시립박물관이 보유한 원나라 종을 교환하는 구상을 제안했다. 이렇게 확보한 기복종을 북한에 돌려줌으로써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자는 것이다.
불교계는 한국전쟁 시기 소실된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인 신계사를 남북 협력으로 2007년 복원한 경험이 있다. 조계종은 지난달 금강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남북한 스님들이 신계사에서 함께 모여 부처님께 기도 올릴 날을 기다리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진우스님은 "금강산과 신계사, 그리고 원산 갈마지구가 그렇게 멀지 않다"며 상황이 잘 풀리면 내년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합동 봉축 법회나 신도들 관광을 추진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비난하는 등 남북 관계 복원에 당장 응하지는 않을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진우스님은 "부정적이지만 반응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긍정적이지 않은가 싶다"며 "북한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동족이고 앞으로도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진우스님은 2022년 9월 28일 조계종 행정 수반인 총무원장으로 취임했다. 내년 9월 27일까지 임기가 13개월가량 남은 가운데 그가 연임에 나설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계종 최상위 규율인 종헌은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진우스님은 "지금 그것(연임 여부)을 직접적으로 말씀드릴 시기는 조금 아닌 것 같다"며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종단 안정이 최우선이다. 종단 안정을 위해서라면 어떤 결정이든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보다는 올해 6월 조계종 국제회의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임시 사무실을 사용 중인 총무원 등 종단 주요 기구가 제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과 전국 각지에 선명상센터를 건립하고 출가자를 늘리는 것 등 현안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근래에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선명상을 보급하고 '젊은 불교'나 '힙한 불교'를 표방하며 여러 활동을 펼친 결과 올해 출가자는 5년 만에 1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고 스님은 전했다.
조계종에 따르면 상반기 수계교육 이수자는 51명이고 하반기 수계교육 신청자는 51명으로 중도 탈락자가 없다면 올해 102명이 출가할 전망이다. 조계종에서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계 혹은 사미니계를 받은 출가자들은 2020년 131명을 기록한 것을 끝으로 2021∼2024년 4년 연속 100명을 밑돌았다.

진우스님은 코가 지면의 바위에 닿을 듯 말 듯 한 상태로 엎어진 채 발견돼 '5㎝의 기적'으로 불린 경주 남산 마애불상을 보존하는 방법이 11월쯤 동일한 중량의 바위를 이용한 모의실험을 통해 결론이 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애초에는 넘어진 불상을 똑바로 세우고자 했으나 행정적인 절차 문제와 파손 우려 등이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특정한 방법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진우스님은 "결론이 나면 내년 중에는 세우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보존 처리를 하게 될 것 같다"며 "내년 임기 안에는 마무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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